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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l 07. 2023

저항에 저항하는 법

운이라면 제가 가져올게요. featuring 노인과 바다


“우리 이제 다시 함께 고기를 잡아요.”

“안 된다. 나는 운이 없다. 나는 더 이상 운이 없어.”

“운 따윈 상관없어요.” 소년이 말했다. “운이라면 제가 가져올게요.”


노인과 바다



 나는 뭘 해야 할지 모르면 무조건 걷는다. 걷다 보면 뭘 해야 할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그때는 심각한 상태이다. 그런 비상상태가 되면 나는 수영을 간다. 아니 수영을 배운다.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수영을 배웠던 터라 완전 기본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급반에는 머물렀었다. 


 마치 맛집에 들어가려고 줄을 선 것처럼, 대기표를 받아 표를 끊고, 그마저도 추첨을 하고, 추첨에서도 떨어지만 누군가가 취소한 표를 기다렸다가 새벽같이 달려가 끊어야 했던 치열했던 수영강습티켓팅(?)을 완료하고 드디어 처음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기초반에 일단 가서 한 시간 수영을 하고 난 후 조용히 선생님께 가서 나를 알렸다. 

 "선생님, 제가 수영을 예전에 좀 했는데요. 일단 기초반에 왔어요."

 "그래요? 자세가 영 아니던데..."


 아... 

 사실 너무 기분이 나빴다. 그 선생님은 내가 수영하는 동안 나를 몇 번 보지도 않았다. 수많은 수강생들이 새로 등록해서 왔기 때문이다. 나를 몇 번이나 봤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그 선생님의 태도에 대해서는 아직도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나는 별말하지 않고 돌아서 나왔다. 

 '나는 지금 저런 태도로 학생을 대하는 선생님까지 신경 쓰며 열받을 만큼 여유롭지 않아.'

 쿨한 척했지만 사실 지금도 그 선생님을 볼 때면 그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자세가 영 아니던데..."

 그 말 때문인지 나는 기초반에서의 나의 처지에 대해 만족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이 많으신 분들의 대열에 끼여서도 불만 없이 내 갈길만 묵묵히 갔다. 수영을 할 때는 온전히 혼자가 된다. 수영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운동이 아니다. 물에 들어가면 말할 필요도 없다. 아무 말 안 하고 싶은 나에게는 나의 차례를 기다리며 앞 뒤 아주머니들 틈에 섞여 있는 것이 더 불편해 죽을 맛이었다. 

 그때마다 그 말을 떠올렸다.

 "자세가 영 아니던데..."

 그래, 수영 배운 지 꽤 되어서 지금은 말없이 기초반에서 묵묵히 내 갈길만 가야 해. 확 앞질러 가서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때론 들었다. 아무래도 그 선생님이 나의 실력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아, 그 선생님은 얼마 후 다른 반으로 가셨다. 분기마다 선생님들은 다른 반으로 이동하는데 그 후 오신 선생님은 무섭지만 열정이 가득한 선생님이셨다. 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이 반 저 반 오가며 가르치셨는데 호통을 꽤나 치셨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도 기안죽고 소리치는 선생님 덕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고, 귀 떨어지겠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킥킥거리곤 했다. 무서운 척하면서도 은근히 혼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저항을 가장 적게 받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내 차례를 마치고 돌아오니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할머니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다들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건 균형을 잘 잡는 거예요." 

 

 균형을 잘 잡기 위해 우리는 매일 이상한 동작을 하고서 자유형과 배형, 평형과 접영을 하였다. 한 팔로 자유형을 하거나, 발차기로만 가거나, 손만 사용해서 수영을 하는 것 등 그 외에도 기발한 방법으로 우리는 그 '균형'을 잡아갔다. 처음에는 시원하게 수영을 해서 쭉쭉 나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런 훈련을 통해서 보다 수영이 잘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균형을 나름 잘 잡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내 몸의 중심이 어딘지 알고 그 중심을 절대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균형이었다.

 내 몸의 중심은 어디 있는 걸까? 어딘가가 기울면 그건 균형이 안 맞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는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 정신을 반짝 차리고 다시 균형을 찾아가야 했다. 그럴 때는 물에 빠지기도 했다.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라앉기도 하고 수영장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다. 앞사람의 발에 맞기도 하고 뒷사람의 팔에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최적의 자세를 찾아가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나는 애꿎은 데 낭비했던 힘을 줄이고, 가장 중요한 자세에 큰 힘을 분배했다. 그러자 힘을 적게 들이고도 멀리 나가게 되었다. 저항 속에서도 최적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에 큰 희열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그 첫 선생님의 말에 최소한의 공감을 할 수가 있었다. 

 '음, 나의 자세가 별로였던 건 맞나 봐.'











 일이 잘 안 풀릴 때 나는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특히 첫 책이 나오고 나에게 많은 일들이 생겼는데 그야말로 불운이 닥쳐온 것이다. 내 나이 마흔이니 아마도 닥칠 것들이 닥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흔도 아프다. 아니 마흔이라 더 아프다.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도 아니고, 방황이 허락되는 20대도 아니며 실패도 배우는 거라던 30대도 아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속 이야기를 할 만큼 이제 사람을 잘 믿지도 않고, 나는 무턱대고 무언가를 시작할 만큼이나 여유도 없었다. 당장 내가 필요한 아이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버거워할 시간이 없었다. 그저 이겨내야 했다. 그리고 이겨나갈 수밖에 없다. 운이 없다고 징징거릴 수는 없었기에 나는 수영을 시작했다. 입 닫고, 생각을 하지 말자. 



 수영을 하면서 아무 생각하지 않고 집중하면서 해방감을 느꼈고, 물속에서 자유로움을 느꼈으며, 또 별로였던 선생님과 열정적인 선생님으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어떠한 저항에도 저항하지 말라. 팔을 허우적거리기 전에, 다리를 들어 올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건 바로 나의 균형을 찾고 유지하는 것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그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연습할 뿐이다. 오늘도 내일도. 



  운동을 배움으로써 나름 인생에 대한 지혜도 더불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아무리 운이 없던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그 일들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는다. 불운 뒤에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고 또 행운 뒤에는 불운이 도사리고 있다. 단 그 끊임없는 변동 속에서 나는 나의 평균값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불행한데 행복한 척하라는 말이 아니다. 불행하다고 이 세상이 끝난 것처럼 우울해할 필요도 없고 행복하다고 이 세상이 다 나를 위한 것처럼 자아도취해서도 안된다. 넘칠 때는 아끼고 모자랄 때는 꺼내 써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나의 균형이다. 흐트러진 나의 자세를 다시 돌리는 것이다. 



 운이라면 내가 가져올게요. 

 


낙담해하는 노인에게 이렇게 위로하는 소년의 말. 


 그래,  운이라면 내가 가져오겠다. 몰아치는 저항이 거셀수록 나는 더 잘 나의 중심을 찾겠다. 

 거대한 폭풍이 몰아칠 때 휩쓸리지 않는 것은 그 폭풍을 유연하게 타면서 균형을 잡는 것이지 그 폭풍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운명론에 운운하면서 칼을 들고 나의 운명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다음엔 행운이 오겠지, 웃으며 내 마음의 곳간에 비축할 양식을 쌓아가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항에 저항하는 것은 저항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그 이후 평생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한 네잎 클로바를 아주 우연히 두 번이나 찾았다. 

 그리고 나는 수영을 관두고 바다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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