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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n 18. 2023

그건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베르트르는 멋진 구절을 읽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는 그 높은 양반들의 모임에서 살짝 빠져나와 이륜마차를 타고 그곳을 떠나서 M이란 곳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 언덕 위에서 서산에 해가 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호메로스의 책을 펼치고, 오디세우스가 고상한 돼지 목동들의 대접을 받는, 아주 멋진 구절을 읽었다. 그 구절은 모두 훌륭했고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는 높은 양반들의 모임 안에서 끼지 못하고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그가 그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그 모임에 끼려고 더 노력한들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베르테르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M이라는 곳으로 곧장 달려가 해가 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책, 호메로스의 훌륭한 구절을 읽었다. 그리고 그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20대의 나는 주인공의 충격적인 결말로 끝이 나는 사랑이야기에 끌렸다. 하지만 40대의 나는 주인공 베르테르가 어떤 것에 주로 편안함과 만족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매력적인 인물인지에 더 끌렸다. 그는 언제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환경으로 자신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너무 ‘젊은’ 베르테르는 ‘슬픔’에 질식하고 만다. 가질 수 없는 그 한 가지가 가진 모든 것을 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 그것에서 행복과 불행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나의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나는 왜 내가 그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어."

나는 종종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곤 한다. 너무나 답답하고 화가 나고 뭔가가 분명 못마땅한데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그 이유를 몰라서 날씨 탓을 하거나 내 옆에 있는 누군가를 탓하기도 한다. 내 눈앞에 있는 남 탓도 해본다. 하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이유는 내 안에 있다. 누군가가 하는 말이나 행동으로 내 인생이 바뀔 수도 있고 몹시 억울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나 그것들이 아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유일한 원인은 바로 '나의 생각'이다. 

 “나 자신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어떠한 상황도 사람도 아닌,”

 이 말은 내 삶을 돌아보게 하였다. 누군가를 탓하며 살기엔 내 인생이 너무나 값지고 아깝다. 비록 누군가가 내 인생을 낭떠러지로 밀어 넣을 만큼 아프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허락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나이다. 

 나는 너 때문에 우는 게 아니다. 나는 나 때문에 운다. 

 나는 상처를 준 너 때문에 우는 게 아니다. 나는 상처받은 나 때문에 운다. 

 나는 가난해서 슬픈 게 아니라 가난한 나 때문에 운다. 

 모든 것은 '나' 때문이다.







 햇살이 눈부신 어느 날, 그날따라 내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친했던 친구와 틀어져서일까? 가족이 그리워서일까? 내가 너무 가난해서일까? 아님 내가 그냥 너무 못나서일까? 문득 눈물이 흐르는 건 갱년기 증상인 걸까? 아무도 없는 길에서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서둘러 닦고 나는 발길을 재촉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돌려서 나의 비밀장소로 향했다. 나의 비밀장소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작은 벤치이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사각사각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싱그러운 풀냄새, 달콤한 공기, 나를 비추는 눈부신 햇살에 눈을 찡긋거리며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울었지만 웃을 수 있다. 아주 나쁜 순간도 그냥 괜찮은 순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제 상처받지 않을 거야. 아니 나는 이제 상처가 아닌 사랑을 셀 거야. 어둠이 아닌 빛을 셀 거야. 비록 주저앉아도 다시 일어날 거야.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 들고 나도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달려갈 거야. 

 눈물이 나다가도 웃을 줄 아는 내가 될 거야. 상처는 빼고 사랑은 더하는 계산기가 생겼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었다. 내 선택적 기억장치에 좋은 일만 선택하는 명령어를 입력해야겠다. 이제는 너무 진지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쉬이 잊어야겠다. 가벼워도 좋다. 즐거우면 더 좋다. 그런 사랑만을 기억하고 더하고 싶다. 나를 몰아치기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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