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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n 19. 2023

무던해질 때까지 무던해지기

젊은 베르테르가 너무 젊었을 뿐이다.

"그처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지나간 불행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않고 차라리 현재를 무난하게 참고 견디어나간다면 인간의 고통은 훨씬 줄었을 거야."


괴테,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



 '조금만 더 무던해지세요.'


 유달시리 길고 추웠던 겨울에서 따뜻한 봄으로 가던 길목이었다. 두어 번 만난 낯선 사람에게 나의 속이야기를 했다. 다시는 안 볼 사람인데 뭘. 그런 마음이 오히려 내 경계태세를 무너뜨렸던 것 같다. 낯선 사람이니 굳이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도 그녀를 모른다. 그녀도 나를 모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시는 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나를 솔직해지게 했나 보다. 다행히 그녀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어서 어떤 대목에서는 그녀가 나보다 먼저 눈물을 보였다. 내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나의 목은 약간씩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나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목소리도 덩달아 차분해졌다. 



 “무던해지세요. 오직 할 일은 바로 이거예요. 무던해지세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지금까지 걱정에 비해 훨씬 더 잘해왔잖아요. 이제는 무덤덤해져 봐요.” 



 무던해지라는 말에 앞에 나온 ‘잘해왔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다시 추스르고 있던 감정을 한번 더 억눌러야 했다. 인정받는 느낌은 참 좋구나.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무덤덤해지라는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가늠하지 못한 삶의 무게가 한순간에 가벼워졌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무던해지자는 것은 내 하루의 기도가 되었다.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낯선 이 가 나의 구세주일줄이야.



 내 삶도 다른 누군가의 삶처럼 나를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기준도 없으면서 그냥 많이 채우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라는 보이지 않는 공식을 대입한 채 소금이든 설탕이든 내가 담을 수 있는 만큼 쏟아부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쏟아부어도 내 마음이 채워지지가 않았다. 내 마음 아래 구멍이 있었나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구멍이 어디에서 생겼나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좀처럼 나를 토닥여주지 못하는 나의 시선, 그게 바로 그 구멍이었다.

 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나만은 나를 토닥여 줄 수 있었잖아. 나를 토닥여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울 일인가? 아직도 나는 나를 토닥여주고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감을 못 잡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의 기준에 모자라 안달복달하는 나를 더 몰아붙이는 나는 되지 않아야지. 슬픈 나를 안아주고, 모지란 나를 토닥여주고, 아픈 나를 쉬게 하는 내가 되어 보아야지. 


 예쁘지 않아도 좋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매일 행복하지 않아도 좋다. 사랑받지 않아도 좋다. 나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그래도 좋다. 




 삶은 채워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받아들인다는 건 또 어떤 걸까? 받아들이는 데도 답을 찾는 걸 보면 나는 주관식에는 서투른 객관식 형 인간인가 보다. 








 베르테르가 나이가 더 들었다면 실패처럼 보이는 사랑을 하고도 무난하게 참을 줄 알았다면 그는 아마도 더 좋은 짝을 만났을 거다. 괴테가 그랬듯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괴테가 20대에 쓴 소설이다. 소설속 주인공 베르테르도 괴테처럼 너무 젊었던 것이다. 열정이 있어 좋은 젊을 때는 그 열정 때문에 오히려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가 있다. 선택할 게 많아서 좋은 그 젊을 때는 오히려 어떤 것도 선택하기가 두려운 때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좋은 점은 세상의 다양한 면을 보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아프고, 어떤 이는 누군가가 떠나고, 어떤 이는 말도 못 할 사고를 겪고. 비극도 일어나고 그 와중에 누군가는 탄생하고, 결혼하며, 승진한다. 그런 일도 일어난다. 세상은 일들의 연속이고 그 일들이 일어나기에 삶이다. 누군가가 나이 들고 아프고 누군가를 탄생하고 떠나고 이런 일들의 벌어짐을 옆에서 보는 것.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일들의 벌어짐을 그대로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예방도 없이 예측도 없이 누구나 나처럼 일어나면 겪고 벌어지면 당해야 한다. 

  젊었을 때는 몰랐다. 나이 들고 보니 그때는 죽을 것 같이 힘들던 일들도 지나면 다 별거가 아니다.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도 살아간다. 드라마 같은 일들도 벌어지고 드라마보다 더 한일도 벌어지는 그런 세상이 인간이 사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젊어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겨울도 결국 지나가고, 바람도 폭풍도 모두 지나간다. 지나가고 나면 다시 잠잠해지겠지. 그리고 또 바람이 불겠지만, 그 바람도 별 거 아닐 것이다. 



 지금 나는 별거 아닌 별 것들을 겪을 뿐이다. 내가 갖고 싶었던 높은 코도, 큰 키도. 삶의 벌어짐 앞에서 별거가 아니라는 생각. 꼬마 때부터 나도 모르게 꿈꾸던 삶의 로맨스도 사실 별거 아니라는 거. 어제 내가 그토록 괴로워하던 그 일도 사실은 별거 아니고, 내일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 일도 사실은 대수롭지 않은,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벌어지는 모든 일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다는 것. 그리고 어느 정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무던해질 때까지 무던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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