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다 그런 것 아니겠니.
옛날 노래가 문득 떠오르는
십대의 소녀로 돌아가
그 때 듣던 노래에 흠뻑 젖는 잠깐의 여유
산다는 건 그런 것 아니겠니
길가에 서서 떡볶이 먹기
모르는 사람 틈에 섞여 수영 배우기
좋아하는 친구와 전화로 수다 떨기
가을 밤 동네 한바퀴 산책하기
한여름 아이스크림 먹기
토요일 아침 알람 없이 자기
느닷없는 아이의 사랑고백
산다는 건 그런 것 아닐까.
사실 산다는 것은
사소하고 별거 아닌 것.
걷다가 숨이 차면 나무 그늘아래 철퍼덕 누워보기
그러다 또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뜀박질하기.
내 목소리가 그리운 사람의 연락
그 안부가 남기는 따뜻한 여운
하얀 종위 위를 채워가는 나의 스케치
자꾸만 부르고 싶은 콧노래
듣다가 눈물이 주르륵 나는 어느 피아니스트의 선율
너와 나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
달짝지근한 커피 한 모금의 풍미
고소한 쿠키 한 조각의 휴식
그러고 보면 내 인생도 참 달달한 걸.
그런 순간들의 퍼즐같이 맞춰져
달리고, 걷고, 서고, 때론 쉬면서
한 조각, 두 조각 채워진
내 인생의 그림들
산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니겠니.
앞을 보고 열심히 달려오느라
멋진 모습으로 완성되어가는 내 인생을
나만 몰랐던 건 아니겠니.
산다는 건 그런 것,
다시 듣고, 기억하고, 자꾸 부르고픈
옛 노래처럼,
산다는 건 이렇게 별것 아닌 것에도 빛나고 고마운 것 아니겠니.
진짜 별거 아닌데, 그 별거 아닌 것들이 채워지는 하루 하루가 소중한 것인지 적어봐야 아는 것 같다.
감사일기를 쓰지는 않지만, 시를 쓰다보면 얼마나 감사할게 많은 하루인지 나는 알게 된다.
요즘 시작한 수영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가는 나를 보면서, 우울한 날도 있고, 피곤한 날도 있지만 하루를 살아내고 쓰는 일기장에 빼곡이 쌓여가는 나의 글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글들은 그저 하루 하루의 기록에 불과할 뿐, 그 하루의 아름다움을 감히 그려낼 수 없음을 알면서 나는 정말 가끔 주책스럽게 감사할 때가 있다.
그냥 좋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에 문득 감사할 때가 있다.
내 주변을 감도는 따스함은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엄마가 수천번 차려온 따뜻한 밥, 아빠가 수천번 문 밖을 나서던 출근길, 까먹었던 군밤만큼이나 많은 우리의 이야기들. 봄, 여름, 가을, 겨울만큼이나 온도차가 큰 아이들이 모여서 손이 노래질 정도로 먹던 귤, 귤과 밤 껍질만큼이나 내가 행복했었던가.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내 품을 떠나 학교를 들어가고, 손에 손 잡고 달을 마중나가던 밤 산책만큼이나 내가 따뜻했던가.
내가 만난 수많은 학생들과 친구들, 그리고 내가 마신 수백번의 커피와 나의 음악, 나의 음악.
그 만큼이나 세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나에게 다정했던가.
그리고 그 순간 순간이 얼마나 빛난 던 것인가를 알아가는 더 깊어가는 인생의 계절.
오늘 나의 하루를 만들어주는 것들을 한번 적어보면, 얼마나 별것 아닌 것이 별것인지 알게 된다. 그 별것 아닌 것들로 오늘 하루가 참으로 좋았다.
그래서 참으로 고마웠다. 오늘.
산다는 건 이렇게 별것 아닌 것에도 빛나고 고마운 것 아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