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이가 저녁을 먹다 말고 물었다.
“엄마, 편의점은 언제 쉬어?”
“글쎄… 편의점은 안 쉴걸?”
“나는 편의점에서 일할까?”
“응?”
편의점을 좋아하니까.
예전에 내가 학교 뒤에 있던 아○박스를 운영하던 부모님을 둔 친구를 부러워했던 것처럼,
그런 비슷한 동기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덧붙였다.
“엄마, 나는 쉬어도 되는 일을 하고 싶어.
너무 힘든 일 말고.”
음… 그래? (속으로는 뜨악. 편의점이 얼마나 힘든데…)
“편의점 좋지. 그런데 편의점은 쉬는 날이 없단다.”
“왜?”
“그건 생필품을 파는 곳이니까. 마트가 쉬면 손님이 불편하잖아.”
“내가 원할 때 하루 쉬면 되잖아.”
“글쎄… 편의점은 그러기 쉽지 않아. 오죽하면 24시간 운영하겠니.”
편의점 사장님이 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또 그만큼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결국, 돈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러자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근데 돈을 많이 벌려면 더 일을 많이 해야 하고 힘들잖아.
나는 주말엔 쉬는 일을 하고 싶어.”
맞는 말이었다.
“그건 중요하지. 그런데 말이야,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면
일하고 싶을 때만 일할 수 있어.”
“진짜?”
대화의 흐름은 결국,
‘정말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원하는 만큼 쉴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화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나는 너무 빡세게 살고 싶지 않아.
8살 아이가 느끼는 어른의 모습은 어떤 걸까.
나는 그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돈을 번다고 아이에게 힘들다고 생색을 낸 적은 없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살아가는 형태도 함께 돌아보게 되었다.
자기 분야에서 뛰어나지 않아도,
편의점 사장님이 아니어도,
자신의 시간을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면.
예전에 나도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일이 내 시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에 관두었던 적이 있다.
다른 일을 시작하면 또 비슷하게 흘러갔다.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여기며
마음을 일 쪽으로 너무 쏠리지 않게,
하고 싶은 쪽으로 돌리려 했지만
환경에 구속받는 게 인간이라 잘 되지는 않았다.
요즘은 ‘여유’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돈에 쫓겼지만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다.
더 나은 일을 찾아 헤맸지만, 더 나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자조가 아니다.
단지 얼마나 인간이 개미처럼,
답답한 챗바퀴를 돌며 살아가는지를,
아이의 질문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했다.
아이의 눈은 얼마나 맑은지,
아이의 심장은 얼마나 팔딱팔딱 뛰는지.
그리고 그로부터 몇십 년이 흘러,
나 같은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왠지 서글펐다.
‘내가 어때서? 잘 살고 있는데.’
맞다.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더 잘살고 싶다.
너무 바쁘게,
너무 돈을 좇으며,
너무 지치게는 살고 싶지 않다.
최근에 지인들에게 들은 말들이 떠오른다.
“몸부터 챙겨야 해.”
“뭘 더 해야 할지보다, 뭘 덜 해야 할지를 생각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가 주어졌고,
그 하루에 내가 존재함으로 모든 것이 괜찮아지도록.
나는 천천히 가고 싶다.
이제.
아이에게 말해 두었다.
“그러면 너가 좋아하는 스포츠카는 못 살 수도 있어.”
그리고 나에게도 말해 두었다.
“천천히 가면, 집은 못 살 수도 있어.”
그런데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토록 열심히 해도 못했으니까,
힘을 빼면 이번엔 또 다르지 않을까?
또 모르지. 어느덧 아이도 커서
나보다 먼저 차를 살지도.
이 모든 생각들이 결국
살고 싶은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어제 아이와의 저녁 대화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어디까지 날아갔는지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