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지
오늘이 지나고 올 내일을
나는 알지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올 것을
나는 알지
해가 지면 다시 해가 뜬다는 것을
나는 알지
꽃이 진 자리에 다시 꽃이 피어날 것을
나는 알지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 다시 찾아올 바람을
나는 알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밀물이 들어찰 것을
나는 알지
시든 마음에도 다시 행복이 차오를 것을
나는 모르지
네가 간 자리에 다시 너가 들어올 지
허나 나는 알지.
빈 자리에 담긴 추억들은 그대로 머물어 있다는 것을
영원히 영원히
빛바랜 일기장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한 단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내 마음에 화두가 된 단어는 '알지'였다. 나는 안다, 모른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 내가 모른다는 것 조차 모른다는 것. 내가 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 내가 안다는 것을 안다는 것.
나, 그리고 에고의 입장에서 볼 때 이렇게 4개의 영역으로 구분한다면, 나는 어느 정도 영역을 확보한걸까.
최악은 내가 모른다는 것 조차 모른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살아가는 사람은 모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같이 엮인 사람은 힘들겠지만.
그만 모르기에!!!
그러나 내가 안다는 것을 안다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내가 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자칫 지나친 자기 확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튼간에, '안다는 것' 그것을 '안다는 것'은 이렇게 복잡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삶의 많은 것들을 사실 알 수는 없다. 내가 겪고 맛보고, 내가 나의 가설을 통해 검증을 통한 것이라할지라도 변수는 언제나 많기에.
그러나 그냥 아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계절이 오고 가는 것 처럼 자연적인 것이고, 그것은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는 전제처럼 만의 하나라도 영원히 사는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외에는 모두 불확실한 것들이다. 나는 모른다가 답일 때가 더 많다.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내 사업이 성공할지, 내가 이사를 갈지 어떨지는 모르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오늘 점심을 무엇을 먹을지 조차 모른다. 결심과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변수와 변심, 오차가 존재하는가.
그럼에도 나는 안다.
자연이 오고 가는 것 처럼, 돌연변이 같은 날씨가 변덕을 부리다가도 한번쯤은 다시 돌아오는 것을, 이렇게 글을 쓰다보면 발행을 하게 된다는 것을.
걸어가는 것 처럼 걸어가는 것이다.
지나가는 것 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문득 나의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지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건 그 사람들과의 추억, 그리고 지금의 순간에 대한 진심.
그래서 이렇게 진심을 늘 다하는 지 모르겠다. 혹은 진심을 다 안해서 후회하거나.
세월이 늘어나면서 아는 건 더 많아졌다.
그러나 모르는 것도 더 늘어났다.
모르는 것은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는 그 앎 때문에 나는 약간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