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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in Lowland May 01. 2020

말하는 밥솥과 노래하는 세탁기

네덜란드와 한국의 '서비스 마인드'에 대하여.



나는 작년까지 전기 밥솥 없이 살았다. 

처음에 네덜란드에 올 때는 이민가방 안에 밥솥 말고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그 이후로도 네덜란드와 한국을 오갈 때 마다 산더미같은 작업 재료들(주로 동대문시장에서 산 각종 실 들) 때문에 전기 밥솥은 챙겨야할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려났다. 


그렇게 6년동안 냄비밥을 먹고 살다가, 작년에야 드디어 엄마가 최신형 전기 밥솥을 가져오셨다.



Talking Rice cooker, illustration by Min van der Plus, 2020.



전기 밥솥이란 가전제품을 처음 본 M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쌀밥이 주식인 나라의 기계는 이렇게 본격적이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밥 짓는 기계가 다프트펑크의 일렉트릭 마스크처럼 쿨하게 생긴것이나, 밥만 짓는게 아니라 보온도 하고 다른 요리도 한다는 것 이상으로, M이 가장 열광한 부분은 밥솥이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전원을 켜는 순간 밥솥이 '안녕하세요 00입니다, 오늘도 맛있게 00 하세요, 00!" 라며 친절하게 인사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걸 보고 M은 충격 반, 즐거움 반이 섞인채 열광했다. 생쌀에서 갓 지은 밥이 되기 까지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계속 종알종알 거리는 밥솥을 보며,  M은 '대체 밥솥이 왜 이렇게 친절하냐'고 경탄했다.

나 역시 놀랐다. 밥솥이 왜이리 말이 많지? 


일단 취사 전 '백미' '현미' '갈비찜' 등등 메뉴 하나 하나를 다 음성 안내 해주는 것은 물론, 


"취사를 시작합니다."

"증기배출을 시작합니다" 

"맛있는 밥이 완성되었습니다, 밥을 잘 저어드세요, 00!"


계모에게 보고하는 신데렐라처럼 부지런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너무 친절하다. 이때껏 네덜란드에 살면서 말하는 전자 제품을 접한 것은 시리나 알렉사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 혹은 구글 맵 운전 모드 뿐인데, 이렇게 살갑게 챙기는 멘트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갑자기 내가 문명의 이기를 처음 접한 구석기인이 된 것 같았다. 


한국에서 익히 비슷한 밥솥을 쓰셨던 엄마 역시 새삼스레 놀라셨다. 우리가 놀라서 지적하기 전까지, 엄마는 밥솥이 이렇게나 친절하다는 것을 인식 조차 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M은 '시각장애인도 배려하는 취지에서 음성 안내를 이렇게 자세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밥솥의 음성이 소거가 되는 걸 보면 그런 취지가 맞는 것도 같지만, '맛있게 드세요' 같은 인삿말은 필수적이라기 보단 장식적인 느낌이 더 난다. 


M과 함께 살게 되면서 세탁기를 LG제품으로 골랐는데, 세탁이 끝났을때 8초 정도 흥겨운 멜로디가 나오길래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었던 M과 내가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많이 쓰는 독일제 지멘스나 보쉬, 인데짓 세탁기들은 버튼 누르면 띡띡 소리나는게 다다. 너무나 본격적인 멜로디가 적극적으로 가전제품에 쓰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 에피소드를 한국의 친구 J에게 말했더니, 그 날 J가 유튜브 링크 하나를 보내주었다. 삼성 세탁기는 세탁이 끝나면 슈베르트의 '숭어'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거기에 맞춰 기타 반주를 하는 외국인의 비디오였다. 




Samsung Washing Machine Song Live by andermansverenlive via Youtube



과연, 기계에 친밀감이 더 들기는 한다. 더불어 멜로디가 저렇게 길면 세탁이 끝난 걸 모를래야 모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든다. 저게 그렇게 반드시 필요한 기능인가?




타국에 오래 살다가 가끔씩 고국에 돌아갈 때,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많은 것들에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작년에 M과 함께 한국에 갔을때는 나보다도 훨씬 더 '외부인'의 관점을 가진 그의 영향으로, 내가 느낀 '고국에 대한 낯설음'을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지내는 한달 간 나는 밥솥과 세탁기 에피소드를 새삼 떠올리며, 그 가전 제품들이 한국의 '서비스 마인드'를 굉장히 잘 대변한다는 생각을 했다. 


네덜란드에서 운전을 할 때는 구글맵이 많이 쓰이지만, 한국에서 운전을 하려면 한국 현지 앱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네이버 맵이든 카카오 맵이든, 말이 너무 많았다. 정말 너무 많았다. 급커브 구간이나 안개주의 구역 같은 옵션 안내야 내가 꺼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체 '오늘도 안전 운전 하세요' 라던지,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같이 사근사근한 멘트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음성도 모자라 화면에서 자막도 나온다. 카카오맵은 특히 만화체의 카카오 캐릭터들이 함께 보여서 M이 굉장히 신기해했다. 


우리는 동아시아권에서 만화체 마스코트나 캐릭터들이 공공 기관 안내에 많이 쓰이는 것에 대해 토론했다. 네덜란드에서만 자라온 M에게 만화 캐릭터는 '애들용'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성인들이 위화감 없이 이 캐릭터들의 안내를 받는 것이 신선하게 보인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는 각 시나 도청은 물론이고 소방청, 경찰청 마저 마스코트가 있다는게 네덜란드와는 굉장히 다르다. 한국에는 심지어 국방부나 국회도 마스코트가 있다. 공공 기관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서비스 정신 때문일까? (그런 점에서 청와대나 법원은 마스코트가 없다는게 눈에 띄었다.)



신분당선부터 3호선까지 이어 타면서 M은 본인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홍수를 흥미롭게 관찰했다. 지하철 안의 TV에서는 끊임없이 '안전하게 지하철을 타는 법', '매너 있게 대중 교통을 타는 법'을 보여주었고,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도,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에도, 계속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몇 층으로 가고 있는지 끊임 없이 음성 안내가 나왔다. 신분당선은 '지금 이 지하철이 시속 몇 km로 달리는가' 를 애니메이션 지하철 캠페인 윗쪽에 자막으로 끊임없이 업데이트 하고 있었다. 겹겹이 쌓인 서비스의 레이어 속에서 내게 필요한 걸 알아서 골라먹어야 하는 부페 같았다. M이 끊임없이 본인에게 낯선 것들은 인지하는 동안 나 역시 나에게 굉장히 새로웠던 네덜란드의 면모를 교차시켜보았다.



네덜란드의 대중 교통에는 멜로디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역은 어딘지 알려주는 목소리 뿐이다. 헤이그 트램은 정차 벨을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고  천장에 '빨간 불'이 켜져 내가 버튼을 제대로 눌렀다는 걸 알려준다. 로테르담의 지하철은 자동으로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내가 버튼을 눌러야만 문이 열린다. 기차에는 작은 스티커로 '여기 기대면 위험하다' '음식 먹지 마라' 정도가 안내되어 있을 뿐이다. 광고판 자리에 붙어있는 것은 대부분 보건국의 홍보물이다.(여기서 또 문화 차이가 느껴지는게, '즐겁고 안전한 섹스를 합시다' 같은 내용이 종종 붙어있다.) 시야가 쾌적하지만, 동시에 가끔씩은 그래도 정차 벨 소리 정도는 내줬으면 싶을 때도 있다. 내려야 할 역을 놓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차역 마다 들리는 지하철의 국악 메들리에 어깨춤을 들썩들썩 추면서 M은 나에게 질문했다. 대체 왜 이렇게 안내가 많아? 한국어와 영어로 된 안내 방송을 들으며 M은 '나야 고맙지만, 한국어로만 해도 되지 않냐'고 말했다. 관광객을 배려한다고는 하지만, 예를 들어 독일 지하철에서 영어로 안내 방송 해주지 않아도 잘 다닐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보니 과연 그렇다. 안내 지도에 영어가 써 있는 것은 여행자로서는 굉장히 고마운 일이다. 

내가 처음 네덜란드에 덩그러니 떨어졌을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영어를 읽을때마다 얼마나 안도감이 들었는지 떠올려보자면 더욱 더.


하지만 영어를 거의 공용어 수준으로 쓰는 네덜란드에서도 영어 안내방송을 하는 대중 교통은 없다. (간간히 기차에서, 특히 암스테르담 부근을 오가는 기차에서 띄엄띄엄 영어로 설명해주는게 다다.)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8년 전 쯤 인천에 놀러갔을때 지하철에서 한국어, 영어, 중국어 3개국어가 나오는 걸 보고 굉장히 놀란 적이 있다. 이런 저런 면에서 한국의 서비스 양상은 타인의 불편을 최대한 광범위하게 예상하고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 같고, 네덜란드의 서비스 마인드는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할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식인 것 같다. 어떤 방식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내 입장에선, 부디 두 나라가 좀 섞였으면 좋겠다.



아직도 낯선 나라에 살며, 이제는 고국 마저 가끔씩 낯설게 느껴지는 경계선의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두려움이 가끔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때 나를 다잡으며 생각한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기 마련이라고, 이건 다 다양한 경험치의 댓가라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세탁기가 어느새 빨래를 끝냈는지 노래를 불렀다. 곧 말하는 밥솥이 증기 배출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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