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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in Lowland Apr 10. 2020

새해는 불꽃과 바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경험한 새해맞이

네덜란드에서 개인적인 불꽃놀이가 허용될 때가 일년에 두 번 있다. 4월의 King's night과 12월 31일의 새해 전야제 때이다.



때는 내가 아직 네덜란드에 도착한 지 4개월 무렵이던 2013년 12월 31일. 나는 헤이그에 있는 한 가정집의 맨 위층에서 살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하숙 구조의 집이었는데, 방에 내 부엌이 따로 있고 화장실과 샤워는 이 집의 막내와 공용으로 사용했다. 아무튼 집주인 가족들과 오고 가며 친해져 있을 무렵, 새해를 맞아 집주인인 봐이난드는 가족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집을 떠나던 아침, 그가 나에게 비장하게 건네준 것은 안구 보호용 고글이었다.


"불꽃놀이를 조심해. 눈을 다치면 큰일이니까."


오, 친절한 봐이난드. 나는 고글을 받아 들며 농담 많은 봐이난드 특유의 너스레라고 생각했다. 불꽃놀이는 나도 어릴 때 놀이터에서 많이 해봤기 때문이다. 불을 붙이면 분수처럼 보이는 분수 불꽃, 땅에 던지는 딱콩 소리가 나는 콩탄, 들고 있으면 내가 요정이 된 것 같은 불꽃 스틱. 그리고 커다란 불꽃은 언제나 먼 하늘에서 터지잖아? 위험할게 뭐 있겠어?


그리고 약 5시간 후부터 나는 한국의 길거리에서 들렸다면 연쇄 가스관 폭발일 수밖에 없는 폭음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아직 낮이었는데! 그리고 밤이 다가올수록 대포가 터지는 듯한 굉음과 각 가정의 지붕에서 날리는 불꽃으로 사방 천지가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미친 건가? 나는 뒤늦게 몇몇 친구들의 새해 파티 초대를 거절한 것을 후회했다. 군대 행군 같던 학교 생활에 허덕이던 와중 보물같이 온 2주 간의 겨울 방학. 새해 정도는 고즈넉하게 혼자 있고 싶었는데 이건 흡사 전쟁터 한가운데 홀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창문을 울릴 정도로 뻥뻥 터지는 폭죽 소리가 커서 영화고 뭐고 볼 수도 없었다.

위협적인 동시에 호기심도 일었다. 그래 봤자 사람 사는 동네고, 사람들이 길에 나와서 터트릴 정도로 허가가 난 폭죽이면, 설마 터트리는 당사자를 죽일 정도로 세기야 할까. 저 사람들이 철갑으로 두른 살갗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왔다. 당시 나는 헤이그의 바닷가 스헤베닝헌 Scheveningen 과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었고, 봐이난드에게서 바닷가에 커다란 모닥불이 타고 있을 거라는 걸 들었다. 1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하는 곳이라 평소에도 자주 걸어가는 비치였다. 나와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웃집 아기들이 깡통 안에 숯을 집어넣고 불을 붙이며 깔깔대고 있었고, 폭죽은 소리만 컸지 아주 먼 동네에서 터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닷가 동네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거리의 모습이 그러데이션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길바닥에서 터트리면 안될 것 같은 폭죽과 불꽃을, 머리 꼭대기까지 취한게 분명한 남자들이 웃통을 벗은 채 낄낄대며 불 붙이는 모습이 한 집 건너 하나당 보이기 시작했다. 연기가 점점 심해져 내가 지금 보통 길거리에 서있는 건지,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장에 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혹시 몰라 넣은 고글을 끼고야 말았다. 전문가의 지도 아래 날려야 할 것 같은 규모의 불꽃을 아무렇지도 않게 뻥뻥 날려대는 모습을 내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계속 걸어야 할까? 갈등이 됐지만 여기서 멈추면 불특정 다수에게 지는 것 같았다. 나도 센 나라에서 왔어! 지지 않아!


그렇게 연기가 자욱한 거리를 헤쳐가며 바닷가에 도달했을 때, 나는 고대 아즈텍 사원의 불꽃축제 같은 규모의 거대한, 정말 거대한 모닥불을 봤다. 화물을 실을 때 쓰는 나무 판넬들을 20층 빌딩 규모로 쌓아놓은 모닥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뜨거운 재를 뿌리고 있었다. 나는 거의 200m밖에 떨어져 있었는데도 그 열기가 느껴졌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사람들은 바이킹의 후손인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스칸디나비아도 아닌데? 평소에 얼마나 억눌러온 게 많았으면 이렇게까지 막 나갈 수가 있는 거지? '질서를 지키는 냉정하고 침착한' 더치 사람들의 색다른 면모에 충격을 받은 채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몇 년 후 2017년 12월 30일에 나를 방문한 친구 M과 B도 불타기 전 나무가 쌓인 규모를 보고 '미쳤구나'를 수십 번 되뇌었다. (기네스 레코드에 도전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내가 봤던 것보다 좀 더 높았을 것이다.)


Vreugdevuur Scheveningen. Illustration by Min van der Plus. 2020



스헤베닝헌의 거대한 모닥불은 Vreugdevuur라고 한다. 2차 대전 후부터 이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 신년 때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롯한 가구들을 불에 태우던 전통이 80년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규모가 커졌고, 이윽고 매년 스헤베닝헌의 비치와 다운도프 Duindorp의 비치 두 군데 중 어디가 더 규모가 큰지 경쟁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에 그 규모로 기네스 레코드를 깨고, 2018년에 그 레코드를 또 깨기 위해 정말 거대한 규모로 지었다가 난리가 났다. 너무 불길이 거세진 데다 바람이 마을 쪽으로 부는 바람에, 용광로 같은 잿더미들이 불을 내고 차를 녹이고(...)사람들이 다치고, 그래서 결국 2019년에는 시청이 허가를 내주지 않아 모닥불의 전통은 이렇게 막을 내리는 것 같다. (물론 아쉬워하는 사람들은 퍼밋을 받기 위해 지금도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불꽃놀이 역시 해가 갈수록 정부 차원의 제한이 강해지고 있는데, 공기 오염과 더불어 부상자가 너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좌파 정당인 Groenlinks는 불꽃놀이를 금지하자는 법안을 제안할 정도였는데 아직까지도 이 화두는 뜨거운 감자다. 2020년 새해에는 아른헴Arnhem이란 도시에서 몇몇 청소년들이 가정집 우편함 안으로 불꽃을 집어넣어 일가족이 부상당하고 집이 불타는 사건도 있었다고 하니, 정부에서 어떻게든 컨트롤을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2013년에 그렇게 혼쭐이 난 이후로는 절대 신년 이브를 혼자 보내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새해는 친구들과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인 네덜란드인지라, 새해에는 친구들 집을 오가며 파티에 참석한다. 물론 길거리라고 해서 얌전하지 않은 건 아니다. 헤이그 시내는 커다란 축제가 열리며 수만 명이 운집하는데, 사람들 사이에선 불꽃이 솟아오르고 경찰들은 항시 대기 중이다. 험한 동네의 경우 도로에 불타고 있는 목재가구를 목격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대체 왜 이렇게 막무가내로 태우는 걸 좋아하는 건지 나로서는 궁금할 따름이다. 리서치를 해본 결과 중세시대부터의 종교적인 행사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하는데, 새해만으로 날짜가 특정된 것은 아니다. 나 나름대로는, 네덜란드 인들의 호전적인 성격이 평소에는 헤젤리흐Gezellig 와 뉙크터헤이트Nuchterheid  함을 추구해야 하는 사회적인 요구에  억눌려 있다가 나라의 허락을 받은 날에 가감 없이 튀어나온다는 결론을 내렸다. 남편인 M에게 물어봤지만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우린 불을 좋아해' 같은 대답이 나왔고,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더니 나름 맞는 말 같다고 했다.


New years eve in Buitenhof, Den Haag. Video by Min van der Plus. 2018





그리고 새해 이브의 불꽃이 사그라드는 아침 10시 무렵, 1월 1일.

사람들은 바다로 모여든다. 몇백 명 정도가 아니다. Nieuwjaarsduik 라고 불리는 이 다이브는 Unox라고 하는 브랜드에서 지원을 하는데, 공식적으로 매년 일만 명 정도가 참가를 한다. 간단한 체조를 한 뒤 10시 30분에 사람들은 주황색 Unox 털모자를 쓰고 수영복을 입은 채 일제히 바다로 뛰어든다.


(Unox의 새해 다이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h7ZOeLungI&feature=emb_title )


왜? 대체 왜? 마음의 불을 식히려고? 이성을 되찾기 위해?


2015년엔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어서 친구 L과 함께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봤다. 군중에 섞이기 싫어서 약간 떨어진 비치에서 다이브를 했다. 겨울로서는 드물게 맑은 날이었다. 바닷물을 예상 그대로 너무 차가워서 나는 한 15초 정도 후에 뭍으로 나와야 했지만, 기분전환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샤워가운을 입고 집까지 자전거로 돌아가는 경험을 이때가 아니면 언제 해보겠는가. (그런데 그 뒤로는 한 번도 안 해봤다. 인생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바다에 들어갔을때, 다이빙 후. Photo by Min van der Plus




생각해보니 네덜란드에 오기 전, EBS에서 네덜란드 여행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새해 다이브가 나왔다. 엄마와 함께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신기한 사람들이 다 있네, 하하하' 하고 남의 일처럼 웃었는데, 딱 몇 년 뒤에 내가 그 '신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무튼 새해 이브의 얌전한(?) 타종 소리와, 새해 아침의 따끈한 떡국에 익숙한 나로서는 7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의 와일드한 새해가 매년 새롭고 놀랍다. 불과 물이 극단적으로 연속되는 네덜란드의 새해 풍경은 과연 20년 30년 후에도 같은 모습으로 지속이 될까, 아니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까.






P.S. 네덜란드인들의 새해맞이를 (2% 정도 과장은 있지만) 소개한 비디오를 링크로 걸어 놓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rGJseovT8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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