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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in Lowland Apr 14. 2020

스낵바 고메 (The Snack bar Gourmet)

네덜란드의 감자튀김과 크로켓, 그리고 스낵바에 대해


내가 네덜란드에 온지 한 달만에 느낀 것들이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비정상적으로 잘한다는 것,

자전거에 사람이 정말 치여 죽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네덜란드 감자튀김은 세계 최고라는 것.


헤이그에서 공부를 시작했을때 같은 반 친구이자 더치인 L에게 '감자튀김 맛집은 어디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흔한 질문이다. 이 동네 떡볶이는 어디가 제일 맛있어? 처럼.

하지만 L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디 감자튀김이 제일 맛있냐고? 그런 게 어디있어, 감자튀김은 다 맛있지.'



맞다. 자고로 튀김이란 신발 밑창도 맛있게 만든다지 않던가.


하지만 네덜란드의 감자튀김은 이런 비유를 들기 미안할정도로 정말 맛있다. 이후로 수많은 스낵바 Snack bar를 전전하며 L의 말이 과연 진실이었음을 절감한 나는 지인들이 네덜란드로 올 때 마다 감자튀김을 반드시 추천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덜란드에 오기 전까지 나는 이 나라를 맛집의 불모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2013년 당시엔 정말 네덜란드 음식에 대한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네덜란드와 독일을 한데 묶어 생각할때가 많아서, 네덜란드의 식문화에 대해서도 '감자와 고기, 소시지, 사우어크라우트' +치즈 정도 먹고 살겠지 라는 막연한 스테레오타입이 만연하다. (아마 대다수의 네덜란드인들이 한국 음식을 중국+일본+인도네시아+태국음식 정도일 것이라 예상하는 것과 비슷할것이다.) 게다가 전통음식으로 악명(?)높은 영국이 바로 옆에 위치하기도 해서, 서유럽이라면 으레 비슷할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네덜란드 음식에 대한 이미지도 그와 비슷하게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내 의견은 그때와 180도 다르다. 애초에 한국이나 여기나 사람 사는 동네인데, 여기만 무슨 문명 사회에서 벗어난 것 처럼 고기만 뜯고 감자만 삶아먹을 리 없지 않은가. 게다가 유럽 대륙에 위치한 이상 수많은 문화권의 사람들이 오가며 다채로운 요식문화가 발달할 수 밖에 없다. 지난날의 나의 좁은 식견과 오만함을 반성할겸, 오늘은 네덜란드의 스낵바와, 그 대표메뉴인 감자튀김에 대해 적어본다.


The Snackbar Gourmet, illustration by Min van der Plus. 2020.


네덜란드의 스낵바는 한국의 분식집과 비슷하다. 한끼 식사보다는 좀 더 간식에 가깝다. 한국의 분식집 셋팅에 필수적인 요소들은 떡볶이 판, 어묵국물통, 튀김이나 김밥, 순대가 쌓인 코너 일 것이다. 네덜란드의 스낵바에 반드시 있는 것은 조리 전 재료들이 깔끔하게 진열된 냉장 스탠드이다. (Nederlandse snackbar 라고 구글에 검색하면 많은 이미지들이 나온다. 아쉽게도 내가 찍은 사진은 없어서 링크로 올린다.) 여러 스낵바를 다녀보았지만 정말 하나같이 깨끗하고 깔끔한데, 마치 플레이모빌 미니어쳐 냉장고를 보는 것 같이 즐겁다. (한편으로는 요식업의 청결도에 정말 철저한 네덜란드의 면모가 보이기도 한다. 암스테르담 관광지 한가운데 같은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네덜란드의 레스토랑이나 스낵바들은 대부분 굉장히 청결하다.)


처음 스낵바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학교 근처 Willie’s Snackbar 였는데, 메뉴판에 적힌 음식들은 하나같이 낯선 이름들이었다. Patat, Loempia, Kaassouffle, Broodje, Frikandel, Kroket.... Broodje 뒤에 적힌 옵션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Broodje Makreel, Broodje hamkaas, Broodje filet american, Broodje ei, Broodje tonijnsalade 등등. 지금이야 이렇게 스펠링도 틀리지 않고 쓰지만 그때는 머릿속에 아예 입력이 안됐다.

감자튀김을 시키려니,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스였다. 펄프픽션에서 '네덜란드에선 감자튀김을 케첩 대신 마요네즈에 찍어먹는다고!'라고 웃던 존 트라볼타 때문에 나는 네덜란드에선 마요네즈만 쓰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마요네즈는 메뉴에 없었다! 대신 모르는 이름의 소스들이 메뉴판에 한 가득 적혀있었다. 혼란스러웠던 나는 '마요...?'라고 그냥 던져보았다. 몇 분 뒤에 내 앞에는 프리트소스 fritesaus 가 뿌려진 갓 튀겨진 감자튀김이 나왔다.

한 입 먹는 순간 느꼈다.

그동안 내가 먹은 감자튀김은 다 가짜였어. 나는 제 2의 고향을 찾았구나. 네덜란드는 왜 감자튀김의 지존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지 않을까?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하지 않나? 나라면 튤립이나 풍차 대신 감자튀김을 국가 홍보 이미지로 쓸텐데!


수 년동안 여기 살면서 수 많은 스낵바를 다녀봤지만 맛의 편차를 느끼기는 힘들 정도로, 네덜란드의 감자튀김은 어느 스낵바를 가든 다 맛있다. 네덜란드나 벨기에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스낵바에 반드시 한번 가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나처럼 당황하지 않고 즐거운 스낵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약간의 가이드를 적어본다.



Patat? Friet?

네덜란드에서 감자튀김은 두 가지 단어로 불린다. 빠땃뜨 Patat 는 북쪽동네에서 많이 쓰이고, 프리트 Friet 는 벨기에와 인접한 남쪽 동네에서 쓰이는데 뜻은 같아서 무엇으로 불러도 상관은 없다. 메뉴판에서 이 두 단어 중 하나는 반드시 볼 것이다. 작은 사이즈를 시켜도 웬만큼 많이 나오기 때문에 혼자 먹을거라면 라지 사이즈 같은건 시키지 말자. 감자튀김을 만들때 쓰는 감자 종류도 중요한데, 네덜란드에서는 전분함량이 매우 많은 Bintje(빈쳬)라는 품종을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프랑스나 미국 감자튀김보다 훨씬 두껍고 크다. 최소 두 번 이상 기름에서 튀기는게 원칙이다.


Patat(je) met........?

감자튀김을 시킬때 어떤 소스와 먹을것인지 말할때 Patat met 어쩌구, 혹은 Patatje met 어쩌구 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멧 met 은 영어의 with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어떤 단어 뒤에 je를 붙이는 것은 네덜란드어 특유의 습관같은 것인데, 이것은 다른 글에서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같은 뜻이라는 것만 알아둬도 된다. 대표적인 소스들을 적어본다.


Fritesaus 프리트소스: 마요네즈와 비슷하지만 지방 함량이 더 적고 점성이 덜하며 단맛이 좀 더 강하다. 마요네즈도 메뉴에 있는 스낵바들이 종종 있지만, 없을때는 프리트소스로.


Pindasaus 핀다소스/Satesaus 사떼소스: 인도네시아식 꼬치구이에 쓰는 땅콩소스 맛이다. 달콤하고 고소한 땅콩맛.


Currysaus 커리소스: 커리맛 케첩인데, 베를린에서 많이 먹는 커리부어스트 currywurst의 소스와 같은 맛이다. 참고로 이 동네에선 커리와 카레는 좀 다른 느낌인데, 카레 향신료가 네덜란드/벨기에/독일 식 커리맛 으로 바뀐것이 아닌가 싶다.


Ketchup 케첩: 우리가 익숙히 아는 토마토 케첩 맛이다.


Joppiesaus 요피소스: 네덜란드 엔스히데 근처의 작은 카페테리아 주인이 개발한 소스인데, 그녀의 별명인 요피 Joppie를 본딴 히트상품이 되었다. 진노란색에 양파와 식초와 머스터드가 섞인 맛인데, 공식 레시피는 며느리도 모르는 미스테리어스한 소스다.


Samurai 사무라이: 인도네시아의 매운 향신료인 삼발 sambal과 마요네즈가 믹스된 소스이다. 대체 왜 이름이 사무라이인지는 알 수 없다. 아시아 향신료로 만든 매운 맛이라 사무라이 정신을 솟구치게 하나 보다.


Chilisaus 칠리소스: 중국/태국식 시고 단맛의 묽은 칠리소스. 한국에선 태국 스윗칠리소스 라고 불리는 것 같다.


Piccalilly 피카릴리: 머스터드에 재운 피클맛 소스이다. 이걸 메뉴에 놓은 스낵바를 많이 보지는 못했다. 시고 떫은 맛이 특징이다.


Patatje Oorlog VS Patatje Speciaal?


위에 열거한 소스들을 가지고 두 가지 바리에이션의 감자튀김을 주문할 수도 있다.


빠땃쳬 올로흐 Patatje oorlog 는 땅콩 소스와 마요네즈(남쪽지방은 커리)를 함께 담아 잘게 썬 생 양파를 올려준다. Oorlog는 전쟁이란 뜻인데, 이 이름에 대한 여러가지 설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땅콩소스를 쓴다는 점에서 식민지배의 잔재가 아닌가 하는 설도 있지만, 감자튀김 책을 쓴 네덜란드 쉐프 피에르 빈드 Pierre Wind에 의하면 그건 아니고 그냥 여러가지 맛이 믹스되어 마치 '전쟁같다'는 뜻이라고 한다.(https://www.nrc.nl/nieuws/2011/01/04/patat-met-mayo-pindasaus-en-ui-heet-oorlog-waarom-11984736-a36230)


빠땃쳬 스페샬 Patatje speciaal 은 마요네즈나 프리트소스, 그리고 커리케첩이나 그냥 케첩을 섞은 후 역시 잘게 썬 생 양파를 올려준다. 커리케첩이냐 그냥 케첩이냐를 가지고 의견이 갈리는데, 개인적으로는 커리케첩이 좀 더 마음에 든다.



Broodje met....?

브로쳬 broodje 는 빵 사이에 각종 재료들을 끼워넣다는 점에선 샌드위치와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스낵바에서 먹는 브로쳬는 일반적으로 샌드위치에 비해선 아주 많은 재료들이 레이어드 되지는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브로쳬를 시킬때도 감자튀김을 시킬 때 처럼 여러가지 재료들을 met 뒤에 붙이면 된다. 재료들은 다 메뉴판에 써있다.


Kaas 까스: 치즈. 치즈 중에서도 숙성이 짧은 용어까스 Jonge kaas, 보통숙성된 벨레허까스 Belegen kaas, 숙성기간이 긴 아우드까스 Oude kaas, 브리 Brie, 염소치즈인 헤이테카스 Geite kaas, 갈릭허브치즈인 크라우더까스 Kruidenkaas 등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Eiersalade 에이어살라드: 부드럽게 마요네즈와 섞어 으깬 계란. 한국이나 일본의 감자샐러드와 비슷한 식감이다.


각종 햄/고기들: 유럽의 햄과 치즈는 한국의 김치 정도의 다양성을 자랑한다. 물론 여기서도 그냥 햄까스 브로쳬라고 하면 알아서 햄과 치즈를 끼워주지만, 스낵바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햄과 고기 필링을 제공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스낵바 뿐만 아니라 고기를 파는 정육점에서도 브로쳬를 파는데 그런 경우에는 훨씬 더 다양한 종류의 고기들을 맛볼 수 있다. 로스트비프, 드라이소시지, 파테 라고 불리는 고기무스, 살라미, 초리조, 육회같은 타르타르, 필레 아메리칸 등등.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 여러가지 재료들로 맛있는 브로쳬를 즐길 수 있다!


각종 생선류들:  잘ㅁ(발음을 쓰기가 너무 힘들다) Zalm은 연어, 마커레일 Makreel은 고등어, Tonijn 토나인은 참치 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주문이 쉬워진다. 훈제연어 , 연어무스, 훈제 고등어, 고등어 무스, 연어 무스, 참치무스 등등 다양한 옵션이 있지만 스낵바 마다 다르다.


그밖의 스낵바 메뉴들


Kroket 크로켓: 한국이나 일본의 고로케와는 다르고 프랑스 크로켓과도 조금 다르다. 주로 크림형태의 라구 ragout와 비슷한 살피콘 salpicon 이라는 고기 필링이 들어가지만, 이밖에도 필링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예를들어 굴라쉬 크로켓 goulashkroket 에는 굴라쉬가 들어가고, 아드아펠크로켓 aardappelkroket 에는 감자 퓨레가 들어가는 식이다. 한국식 고로케가 그 자체로 튀긴 빵이나 마찬가지인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빵 사이에  크로켓을 끼우고 머스터드를 뿌려 먹기도 한다. (처음엔 빵 사이에 빵을 끼운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Kipcorn 킵콘: 닭이나 칠면조 고기를 긴 스틱 형태로 만들어 빵가루를 두르고 튀긴 음식. 여러가지 소스와 함께 먹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칠리소스를 제일 선호한다.


Loempia 룸피아: 중국식 춘권 튀김. 네덜란드에서는 이 튀긴 춘권을 한때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식으로 '룸피아'라고 부른다. 예전에 한 더치 친구가 룸피아가 어디 말이냐고 물어서 나 역시 당황한 적이 있다. 나도 처음 듣는 단어인데.


Kaassouffle 까스수플레: 점성이 약한 치즈가 사이에 들어간 납작한 밀가루 반죽을 빵가루를 두르고 튀겼다.


Frikendal 프리켄달: 소세지와 비슷하게 생긴 잡육 튀김이다. 프리켄달 스페샬을 시키면 빠땃쳬 스페샬과 똑같이 믹스된 소스와 생양파를 뿌려준다.


Gehaktbal 헤학트발: 미트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레이비나 머스터드와 함께 나온다.




한 나라에 대한 인상은 정말 여러가지 요소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음식이야말로 가장 감각적인 방식으로 기억에 남지 않나 싶다. 네덜란드에서는 인도네시안, 수리남, 타이, 베트남, 중식, 이탈리안, 프렌치, 그리스, 중동, 폴리쉬 등 너무나 다채로운 문화권의 음식을 경험할 수 있고, 그 음식들이 네덜란드화 된 것을 보는 것 또한 매우 흥미롭다. 한국에서 먹는 중식이나 일식이 한국화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네덜란드의 스낵바는 여러 문화의 멜팅팟인 동시에 동시에 너무나 네덜란드적인 특성도 간직한 특별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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