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_타인이라는 습격_
따뜻한 세계는 언제까지나 그곳에 안온하게 존재할 수 없었다.
대중 영화 속 이야기가 그렇듯이. 겉으론 아무리 평화로워 보이는 초반부 줄거리 일지라도.
졸음에 먹혀가는 관객을 깨울만한 갈등이 드러나게 마련. 새로운 사건이 터진다.
혼자 따뜻한 쓰레기장에서 드러누워 노닥거릴 땐
그곳이 쓰레기장이든 냄새가 나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쓰레기장이 더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러운 곳에서 살면 병이 든다고 이야길 들었다.
그런 말에도 동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윽고 그 쓰레기장 거주권을 박탈당하고야 말았다.
분노보다는 당혹스러움이었다.
세계를 위협하는 건 또 다른 거대한 문명세계였고,
작은 세계의 군림자는 큰 세계의 군림자의 압제 앞에는 아무 힘도 못쓰고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일순간의 습격.
굳건히 자리 잡혀있던 파라다이스는 이불과 베개로 얼기설기 막아놓은 어린이들의 집짓기 놀이였다.
외부의 습격은 엄마가 밥 먹자며 아이를 부르는 다정한 말소리처럼. 그렇게 습격해 들어왔다.
모든 것은 헤집어 붕괴되었다.
역할을 잠시나마 부여받았던 영웅과 악당과 남자와 여자와 모든 이야기들은
한낱 종잇장에 적힌 낙서보다도 더 한심한 것이 되었다.
즐거운 세계는 모두 끝이 났다.
습격은 자아가 만든 우주를 여지없이 부쉈다.
자폐아이는 그렇게 타인을 경험한다. 타인은 습격이었다.
선생은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망설이는 나를 답답해했다.
친구들은 조용하고 말없는 아이의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말 많은 친구들, 활동적인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가 곧 진리가 되었다.
그들이 만든 진리의 기준에 나는 부적합한 존재였다.
생각하는 만큼 이야기해야 소통의 근육이 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늘 생각은 많았으며, 무거운 생각을 풀어내기에 입술과 혀는 순발력이 부족했다.
아니 그보다도, 혼자서는 무엇이든 가능했던 자폐세계의 전능자를 벗어나
타인과의 관계라는 그 미묘한 질서에 들어서는 일이 고역스럽게 느껴졌다.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 자체가 나에게는 수줍고 부끄러운, 낯선 일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은 내 그림에는 관심을 가져주었다.
교실에는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중에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은 아주 나쁘지 않은 것이었다. 난 희소한 인재였다.
평등한 듯 안온해 보이는 교실에도 긴장관계는 흐른다.
유년기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위계가 존재한다.
나의 자폐세계, 나의 생각, 나의 세계관 즉 나라는 존재가 타인으로 가득한 교실 공간 그곳에 받아들여질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은 나의 그림을 좋아해 주었고. 나는 내가 그리는 그림을 얼굴로 집단에 섞여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