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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osh Dec 08. 2020

인간은 왜 중독에 빠지는가?

우울함을 딛고 생명을 살리는 자


2020.10.12 말씀묵상
[21:25-27]
25  극악하여 중상을 당할 이스라엘 왕아  날이 이르렀나니  죄악의 마지막 때이니라
2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관을 제거하며 왕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27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인간은  중독에 빠지는가
중독은 역사적으로 계속 이어져온 죄악의 결과물이고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이다. 우상숭배의 죄악이 지금 현대에는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중독되는가? 그리고   중독으로 영혼이 메말라갈때까지 스스로 아무런 해결책을 내릴수 없는 것인가? 어쩌다가 결국 심신이  망가져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할  밖에 없는가

 건강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섬길  없는가

먼저 처음,  질문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나님으로 부터 지음받아 하나님을 위해 사는 목적이 아니라면, 인간은 스스로 진화하여 생활하면서 결국엔 무슨 이유로 살아가고 죽어가는가. 간단하게 답을 찾자면 그건 스스로의 행복영위라고  수있다. 고통받기 위해 사는 동물은 없을 것이다. 나름의 행복, 가치를 위해 산다고 하면 복잡한 인생학 문제에 적당한 답을 둘러댈  있다

그러나,  행복이란 무엇인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도, 연애를 하는 것도 모두 행복한 일이다. 그러면  모든 것을 전부 행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인가? 행복이라는 조건이 애매할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것을 달성할  있는 행위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  모든 것을  알기도 전에 죽을 판이다. 질서없이 잡동사니들이 늘어져있는 방을   처럼, 인생이 무질서 해진다. 나는 지금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지, 맛있는 디저트를 먹어야하는지, 맘에드는 이성을 만나야 하는지, 또는 봉사활동을 해야하는지 행복의 우선순위를 가늠할 수가 없다.  모든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나의 행복  이상의 무엇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추구해야하는 목표를 선두로 우선순위들이 일렬로 줄세워진다. 고민은 조금 줄어들게  것이다. 사람들이  게임에, 마약에, 드라마에, 영화에, 책에, 사람에 중독되고 마는 것일까. 비어있는 시간을 견딜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존의 위협과 관련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영위중이다. 21세기 지금 인간의 삶의 수준은 생존의욕구를 채우고도 너무 많이 남는다. 남는 시간은 어딘가에 쓰여야만한다. 시간이 너무많아버리면, 우울해진다.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나라는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모든 것이 아득해져만 간다. 우주에 먼지같은  라는 존재는 지금 여기서 목을 매달고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의미두지 않을 것이다. 등등등. 그렇게 존재의 부재감을 느끼게 되므로 중독을 필요로 한다. 무엇인가에 몰두하게 된다. 재미난 이야기에, 자극적인 이미지에, 스릴있는 스포츠에, 나를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누군가에게

중독된다

몸에 해롭거나 정신에 해로운 소비행태에 중독되면 육체나 정신이 망가지게  것이다. 혹은 다른 무엇에 중독된다면 어떨까. 만약 운동에 중독된다면 어떨까. 몸이 건강해질것이다. 그럼 운동중독은 다다익선인가. 중독에서 예외되는 선한 중독인가. 인간의 본질적인 공허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동일한 행위의 반복에 더욱 깊이 천착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영적붕괴라고   있다. 마약이든 운동이든, 돈이든, 사람이든, 그것이 중독되는 순간 마음의 본향집은 점점 멀어져가고 영혼은 붕괴되고 만다는 것은 동일한 현상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고 이런 중독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애당초 본문의 이스라엘이 이렇게 심한 핍박과 박해, 심판을 받게  경위는  중독의 정도가 매우 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 존재의 우울과 공허, 영혼의 핍진 안으로 제발로 걸어들어갔고,  결과가 지금 이것이다. 대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끝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육체의 멸망은 영혼의 구원이다

중독에 깊이 빠져서 통제를 상실하고 망가져버린 정신과 육체를 붙들고 우울한 적이 많이 있다. 과거에는 매우 심각했고, 지금도 아주 자주 그러곤한다. 그럼 결국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오늘도 이렇게 헤매고 있다.  사실을 인정하고 나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죄악의 실체를 확인할 때에야 제대로  삶을 다시 시작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영혼의 갈함은 인간의 어떤 노력도 채울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라. 육체의 연습은 어느정도 융용하나 경건의 연습은 내세와 현세에 모두 유익할  아니라 영혼을 구한다

나의 영혼을 구하시려 매일마다 나의  속으로 뛰어들어 대속하시는 예수그리스도께 감사를 드린다. 그를 위해 살것이다. 또다른 누군가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의 붕괴된 영혼을 살리는 은혜를 위해 간구할 것이다. 내가 십자가의 도를 위해 쓰일  있기를, 쓰인다는  사실에 기뻐 감사할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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