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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osh Dec 08. 2020

시한폭탄같은 신앙생활

낮에 속한 사람으로 살도록, 더 나아가


2020.10.21 말씀묵상 
[살전5:5-8]
5 너희는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살전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같이 하라

때와 시기에 있어서는 따로말하지 않는다고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말한다. 재림의 시기는 언제인가?  당시에도 예수님은 “ 돌아온다. 도둑처럼  때가 임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승천하셨기에, 사람들은 긴장하고있었을 것이다. 어떤 말씀에서는 “정녕 말하건대  세대가  멸망하기 전에 돌아올것이다라는 부분도 있다.  시절에  세대라고 한다면 30~100 일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대가  멸망하고도 2000년이 지난 2020년에 우린 살고있다. 도대체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신다는 말인가

그리스도인의 삶은 정말 녹록치 않다. 특히  당시에는, 종교박해가 심할때였다. 자기가 입을것, 먹을것, 자는것 등등을 포기해가며 신앙생활을 해야했다. 빨리  시기가 끝난다면, 아니면  시기가 적어도 언제쯤인지   있다면, 조금  힘들거나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기를 모르기에, 또한 도둑같이  날이 임한다는 비유적인 말씀만 남겨놓으셨기에, 그들은 그날 하루하루 자신의 목숨이 다할  까지 주님에게 충성하는  밖에 없었다. 그리고  타임어택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신앙생활이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머리위에 얹어둔  처럼,  깨어있는 긴장을 요한다. 어쩌면 매우 현명한 판단이다. 시한부종말론자들처럼, 구원과 재림의 시기를 정해놓는다면 과연 제대로  신앙생활이 가능할까

무슨 일이든  끝이 언제쯤이다 라는 가늠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멘탈이 학습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육체는 멘탈이 지배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시험기간이 언제까지인지 구체적으로 정해놓기때문에  기간동안 바짝 집중할   있다. 반대로,  기한을 구체적으로 상정하지 못한다면,  불안에 시달려야  것이다.  극도로 긴장해야할 것이다. 완전히 과업을 포기해버리거나, 혹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과업을 완수하기위해 모든 것을 바치거나, 둘중 하나가  것이므로

일상을 살다가 보면 신앙의 법칙에 대해 까먹곤한다. 신앙에 대해서 말할 , 주님은 차갑거나 뜨겁거나 하라고 하셨다. 어중간한 믿음은 없다고. 이런 말씀은 성도들로 하여금 매우 불안하게 한다. 엘리야가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다툴때,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저쪽에 붙을 것인지, 이쪽에 붙을 것인지 확실피 편을 가르라. 그러나 사람들은   앞에 우물쭈물 움직이지 못했다. 이런 반응이 일반적이다. 우리모두 똑같다. 하나님을 위해  인생을  드릴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이 정말 도둑처럼 임하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주님께  드려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가? 주님의 말씀은 명확한데

밤에 속한자가 아니라, 낮에 속한자가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철저히 밤에 속한자 인것 같다. 말씀을 읽고 주님앞에 매달리는데도, 좀처럼 밤에속한 나의 생활습관이 해결되지 않는다. 밤에는 눈이 환하게 깨어있고, 낮에는 잔다. 그런 생활패턴은 자연스레 음란과 악독, 이기주의와, 나태, 게으름에 빠지도록 만든다. 군인으로서 입대를 앞두고 있으므로 나는 더욱이 아침을 깨우고 밤에 자는, 또는 밤에 보초를 서서 나라를 지키는 그런 생활습관과 생활신조에 익숙해져야 한다. 군인의 삶은 어쩌면 신앙인의 삶과 닮아있다. 전쟁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폭풍속의 고요함,  한가운데서 깨어 긴장하며 나라를 지키는 군인. 그리고 마지막 때가 언제 다가올지 모르기에 거룩함으로 옷입고 소망의 투구를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신앙인. 둘은 닮아있다. 군인으로서 준비해야할 길이든, 신앙인의 삶이든 나는 결국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삼겹줄은 쉬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주님의 말씀과, 종말의 때에 내가 깨어 주님앞에 나아갈  있으려면 공동체의 필요성이 긴급하다. 힘이 들때, 고난이 닥칠때가 아니더라도 말씀으로 주를 찾는 , 그런 훈련이 중요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깨어있길 권면하며 함께 거룩에 힘쓸  있는, 주님이 다시 오실 마지막 때를 함께 준비할  있는 동역자들과의 신앙공동체가 너무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나를 포함해 정말 많은 청년들이 잃어버린  되어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믿고싶은 생각도 있으나 교회공동체를 신뢰하지 못해서, 여러가지 기독교의 안좋은 모습을 보아서, 자신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똘똘뭉친 공동체를 만나지 못해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떠돌고있다. 나는 알고있다.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그들을 지금도 기다리고 계시고 밤낮으로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할까? 자기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 적응하는  말고는 정말 방법이 없는걸까
코로나19사태로 인하여서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교회건물의 무용함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성급하게 의미부여하는 것은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교회 건물과 체계, 그안에서 필히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의 대안이 될만한 새로운 예수안의 공동체가 등장할 수는 없을까? 이런 거시적인 안목속에서 주님의 임재를 구한다. 내가 쓰임받을  있기를, 또한 그이전에  개인적으로 주님앞에 거룩하지 못한 여러 문제들이 여전히 있음을 회개하고 주님의 임재를 구해야 겠다. 선한마음을 주시고, 성령이 함께하시는, 깨어있는 삶을   있게 해주세요.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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