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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osh Jan 06. 2021

그분만의 방법

나의 수치를 바꾸시는 주님 앞에


2020.11.03 말씀묵상 

[대상2:4]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더라

성경에는 일반사람들이 보기에도 눈쌀찌뿌려지는 죄악을 가감없이 기록한 말씀들이 많이 있다. 다윗의 살인과 강간이라든가, 가인의 동생살해라든가, 근친상간이라든가 기타 등등. 오늘 본문같은 경우에도 야곱  이스라엘의 자식  하나인 유다는 자기 며느리와 멋모르고 동침해 자식을 낳게된다.  수치의 사건이 낱낱이 기록되고 마음이 낮아진 유다와  태로부터 다윗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진다.

어쩌면 하나님의 시선이란 인간과는 많이 다르지않을까 그런생각이 들었다. 요즘 시대 사람들은 도덕과 인성에 매우 엄격하다. 본인들의 삶에서도 그런 윤리들을  지키는지는  문제를 까놓고 가감없이 판단해보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지만. 모두가 제각기 심판자의 노릇을 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그래서 요즘 시대에 사람들앞에 공개적으로 나서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 아주 거룩한 이름의 인물들도 오늘날 사람들앞에 유명한 존재가 되면 아주 소리소문없이  가는 수가 있다. 그렇게 따지고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의 경중은  시대를 사로잡는 문화와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어있는지에 아주 지배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볼수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인간을 심판할  있는 권을 부여하지 않으셨다.  믿음의 거장 다윗조차 누가보기에도 귀신들려 자신을 죽이기위해 달려들던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아니 못한것이라고 해야한다. 그의 죄를 판단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으로서  시대에 맞는 사명과 역할을 짊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하니까. 빻은 말과 빻은 행동을 해서는 안될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우리가 각자 가지고있는 결코 해결되지않는 죄의문제를 하나님은 담당하실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부끄러운 수치스러운 죄의 기록을 회개의 역사로 바꾸기원하시며,  방법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완전한  영혼으로 거듭나게 하시려고한다. 그게 중요하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은 부끄러운 자신의 수치를 있는그대로 주님께 드려야한다는 것이다. 유다는 그렇게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가는 영광과 축복을 누릴수있게 되었다. 이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상징이다. 나의 의로움 속에서 예수님은 역사하시지않는다. 예수님은 병든자 죄를 지어 고통받는자에게 필요하신 분이시다. 치유하시는 분이시다. 결국 나의 수치스러운 죄악을 통해 다시금 새생명이 일으켜지는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다.

나는 그럼 무슨 말을   있을까. 이런 주님앞에. 나는 어떻게 마음을 먹고 서있어야하는 걸까.   있을  있을까. 무릎을 꿇어야 할까. 주님의 은혜가 내게 너무 크다. 나는 아무말도 않고 그저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려고 한다.  삶에 베푸신 모든 기적같은 동행에 감사를드리고, 내가 수치스러운 나의 이런 죄된 모습이라도 주께 쓰임받을수있다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엉금엉금 주께로 기어가야하겠다. 주님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길게 주님앞에 기도하며 머물러있도록 나에게 성령을 주세요.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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