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iel Josh Jan 07. 2021

생명을 낳는 계보, 하나를 넘어서는 우리

허다한 무리를 뒤쫓는다


2020.11.04 말씀묵상 
[대상2:18] 헤스론의 아들 갈렙이 그의 아내 아수바와 여리옷에게서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낳은 아들들은 예셀과 소밥과 아르돈이며

다윗의 계보에 대하여 말씀이 말할때까지만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 설교에 자주 등장하는 성경의 핵심인물 다윗. 그의 계보는 유다로부터, 이스라엘로부터, 하나님으로 부터 내려오는 것이고, 다시  계보는 예수그리스도라는 인류의 구원자에게로 전승되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의미에서 묵상이 가능하다. 저번 묵상처럼 유다의 죄된 수치의 기억이 하나님에게는 역으로 영광의 역사가되어지는 기적이라든가. 결국에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계보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이라든가. 그러나 오늘은  이름도 생소한 헤스론이라는 인물의 계보에 대해 나온다. 물론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의미가있는 인물이겠으나, 생소하다는 이유만으로 묵상하는  자체가 힘들었다. 신학을 공부하지않은 나로서는 그저 겉핥기 식으로 읽어낼수밖에없었고, 묵상에 대한 마음의 중심이 건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묵상해설을 보는데, 이런 말씀이 마음에 꽂혔다. 예수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하는 점은,  과정중에서 개인이 어떻게 하나님앞에 순종하여  눈부신 업적과 성취를 이루어냈는가가 아니라  계보를 소중히 여기고 이어나가는 그것자체가 귀하다 라는 것이라는 .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인간, 인물 그자체에 주목하는 스토리텔링에 노출이 많이 되어왔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 성공한 위인들의 위인전을 읽었고, 영화에서는 비범한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했으며, 애니메이션에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관심을 끌었다. 그러다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는 인간의 노력과 성취 그리고 업적 그리고 그의 인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역시 말씀묵상을 하기전에 또한 스스로를 그런 함정섞인 관점으로 되돌아보며 다짐했다. 멋지게 살고싶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업적을 이루어내리라. 나는 할수있다. 나는 도전할 것이다. 이런 모종의 자기긍정에는 지독한 함정이 숨어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내게 보이신 언약과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사명 그리고 열방가운데 이루어질 주님의 나라인데,  여전히 개인에 함몰되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삶속에 역사하셔야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유는 내게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그분의 계획안에 선한 모든 일들이 맞물려 역사하도록 풀려나가는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삶의 문제가 풀리지않을  그분을 원망하는 경우를 본다면,  이유는 믿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개인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있다.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있었는지, 다음 세대를 짊어져갈 청년들이여 교훈을 찾고 배우라, 그리고 다윗과 같은 사람이 되어라! 라는 말은 수련회때마다 빠짐없이 나오는 단골멘트였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줄수있는 말씀이라는게 결국 무엇이겠는가. 그들이 비전을 키우고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꿈을 심어주는  아니겠는가. 도전심과 야망을 불러일으켜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근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설교의 말씀과 부모님이 원하는 아이들의 인재상을 섞어 고육을 하게  것은 아닌가? 하나님이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하시는  아닐텐데 아직도 아이들은 꿈과 희망으로 교훈을 주는 다윗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한다.

그게 아니다. 중요한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성공하고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 되는지가 아니다. 내가 세상에서 인정받는 기독교인이 된다고해서 기독교가 사람들의 눈에 멋져보인다거나, 혹은 내가 우월한 위치에 있어서 기독교가 좋은 가르침이라고 설파할수있는 자격이 생긴다거나 하는 접근은 매우 위험하다. 그건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길과 완전 반대로 가는 길이다. 기독교의 우월을 빌어서 범해진 추악한 죄가 얼마나 많은가.

중요한건 나의 훌륭함이 아니다. 중요한건 나의 성취와 성공, 그것으로 써내려가는 나의 이력이 아니다. 오늘 말씀본문에는 이렇다할 성취나 특징이 없는 이들의 계보가 성실하게 적혀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들을  기억하고 계시고 생명이 생명을 낳는  모든 과정들을 귀하다고 말씀하실게 분명하다.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간단하다.  기대에 부흥해야하는  아니다.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 믿음의 계보를 전승시키는 .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땅이   다시 죽고 다시 되살아나, 회복되기 까지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이 개인적인 11 관계를 떠올리면서 동시에 사명의 퍼즐조각으로서의 나를 생각한다. 하나님은 나를 개인으로 부르시는  아니라 공동체로 부르셨다. 믿음의 공동체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에 힘쓰며 거룩을 향해 달려나간다. 내가  개인의 관점과 역량 등에서 벗어나 인류의 하나임과 동시에 복음의 증거자로 허다한 믿음의 무리들의 뒤를 따라 예수의 자취를 밟아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나의 공로에 집착하느라고 하나님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어이없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빛도 소리도 없이 주를 위해 스러져 믿음의 씨앗이 되는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분만의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