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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osh Mar 27. 2021

막힌 혈관 처럼 위험한

주님과의 소통을 뚫어내야 한다

2020.11.19 말씀묵상  


[대상10:13-14]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사울이 죽은이유는 다름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고 성경말씀은 전하고 있다. 그 범죄함이란 결국 하나님께 묻지 않음이었다. 하나님과 교류를 하지 않고, 고립되어있는 상태에서 혼자 자기 삶을 살아냈기에 그것이 하나님앞에 범죄함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나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인가? 사람은 죄된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늘 범죄하는 것을 어쩔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부족한 인간을 이끌어 주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거룩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사울은 하나님과의 연결고리가 끊겼다. 고립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킬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사무엘을 통해서 또한 다윗을 통해서,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울에게 경고하신 바 있었다. 마치 이스라엘에게 경고하는 선지자를 보내시듯. 그러나 영적으로 메마른 정도가 매우 심하자, 하나님도 방법이 없으셨다. 내버려두시고, 악신에 들리게 하시고, 결국 죽음에 이르기 까지, 사울은 끝내 변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내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이 들었던 적이 있다. 몸이 아픈 와중이었는데, 정신이 피폐해지다보니까 그런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모두 약해져있는 상황에서, 내가 만약 죽는다면 나는 과연 꺼지지 않는 유황불길을 피해 하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내가 이런 믿음없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전부를 드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살다간 힘들겠다고. 그러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과 그 이후의 심판에 대한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괴로웠고, 무서웠다.


다시 건강을 되찾고나서 생각해보건데, 그것이 다 미신은 아니었지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느꼈다.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 놓인다는 것. 나의 영적인 오랜 친구가 언젠가 나에게 조언해준 바 있듯,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과 친구되어있는 그런 친밀한 관계를 잃어버리는 순간 그런 두려움과 어색함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했다. 하나님은 나의 옆에서 나와 함께 동행하시길 원하신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나의 길 나의 고민만을 모색할 때, 죽음 그 이후의 삶에 대한 답을 잃어버리고 만다. 구원의 확신, 하나님과의 관계의 진실성, 이런 소중한 믿음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말씀묵상이 이렇게도 중요하다.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은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다. 대화다. 소통이다. 막힌 혈관처럼 서로 오가지 못하는 사이가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골이 깊어진다. 나는 더이상 주님께 묻지 않게 될 것이고,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것이며 그렇게 내 삶의 선택들을 내가 해나가게 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위 한 삶은 하나님의 신이 나에게 부어짐으로써 가능한 것인데, 그 통로를 내가 막고있는 한 어떤 영적 변화도 회복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묵상을 할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내가 다시 그 영적은혜로 충만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날마다 내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을 숨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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