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 타인이라는 습격

7_왕따와 이방인_

by Daniel Josh


집단의 세계에 발들이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낙인찍히고 고립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왕따’라고 부른다.

왕따는 이방인과 그 결이 다르다.
왕따는 뚜렷한 대상화에 의해 괴롭혀진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이나 행동이 구설수에 오르고 그날의 화젯거리가 된다.
대상의 존엄성을 박탈시키기 위해 구성원 모두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그런 행위들을 통해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유대를 느낀다.

반면 이방인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무리에 섞여있는 듯 섞여있지 않다.
대상화되지 못하는 존재감을 지닌 존재가 이방인이다.


나는 왕따는 아니었다. 왕따를 당한 적은 없다. 운이 좋았다.
왕따는 종종 못 생겼거나 뚱뚱하거나 가난하거나 혹은 아무 이유 없이 생긴다.
직관적으로 드는 심리적 반응에 의해 싹이 튼다. 그것이 여론을 타 공감을 얻음으로 인해 확장된다.
아무런 이유 없이 왕따가 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어떤 심리적 장벽이 있었다.
어떤 누군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기엔, 눈치를 많이 봤다. 겁이 많았다.

집단에서 동떨어지는 행동을 표면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왕따는 그런 행동을 했기에 찍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왕따를 바라보았다.
학교폭력은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어두운 그림자다.
괴롭힘 당하는 아이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방인으로서, 왕따라는 존재를 생각했다.
놀랍게도 여타 아이들은 엎질러진 물에 흐르는 전류처럼 반응하곤 한다.
극단적으로 차갑고 뜨거운 혐오의 감정이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저항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나이가 어릴수록 무비판적인 수용을 하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조롱 위에 가볍게 조롱을 얹었고,
여러 겹 쌓인 가벼운 악담들은 대상을 짓눌러 죽였다.

그런 과정들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소극적이고 뚱뚱한 여자아이가 외모로 비난받고 있었다.
부모님이 정성껏 지었을 하나밖에 없는 이름은,
혐오스럽고 지저분한, 전염되는 바이러스처럼 해로운 존재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아이와 직접 이러저러한 대화를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 아이에게 가해지는 그런 가혹한 처사가 부당하게 느껴졌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 섣불리 분위기를 따라 판단 내리지 않겠다.
무리와 섞이기 위해 잘못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면 그 언어를 포기하겠다. 그런 마음을 먹었다.
이방인은 아직 목소리를 낼 힘이 없었다. 외부세계에는 그저 방관으로 비쳤을 수 있다.
괴롭힘을 무리들 중 친한 친구가 그 따돌림에 가세한 것을 보고 분노해 따진 것 말고는
왕따라는 부당한 처사를 적극적으로 막아내지는 못했으니까.

그러나, 어린 자폐소년에게 한편으론 절대적이었던 집단 세계로의 편입.
그 편입을 포기하는 일이 이방인 소년의 작은 저항이었다.
그게 씨앗이었고 시작이었다.

두 세계는 갈라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중심부에 존재하는 기득권층의 입장을.
그들은 아쉬운 게 없다.
사람에 둘러싸여 있으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
사람 관계는 공정하게 맺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으로 맺는 것이다.
물론 그런 관점에서의 이해가 학교폭력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다만 이방인 소년은,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고 싫은 사람을 멀리하는 자연 인간의 생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후로도 오래도록 인간 본연을 미워하며 옳고 그름에 집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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