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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osh Apr 03. 2021

나의 한계와 나아갈 방향

내가 지금 바라보는 곳은 어디인가


2020.12.07 말씀묵상 


[대상22:7-8]

7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피를 심히 많이 흘린자가 된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어도 건축하지 못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지은 죄의 무게는 하나님과 그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그가 행한 선은 선대로, 지은 죄는 죄값대로 치르는 것이 공의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의 법칙이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는 그 분안에서 사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자유함을 얻는 것이다.


구약말씀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예수님이라는 분은 어떤분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자칫하면, 구약의 모든 말씀은 묵상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해버릴 수 있다. 예수님이 단번에 모든 죄를 사하시는 능력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그 예수님을 믿기만 믿으면, 나의 삶의 문제와 영적문제는 모두 해결받는다고.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예수님을 믿기만 믿는다는 그 믿음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3년동안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쉬지 않으셨다.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나서 십자가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명도 빼놓지 않고 다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그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이 있을 때에 성령께서 들은 말씀들을 깨달아 알게하시는 은혜가 있었다. 내가 날마다 묵상하는 말씀은 능력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가끔은 내가 설교자도 신학자도 아닌데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올바로 되고 있는가 하는 의문과 불안도 찾아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태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아버지 목사님께서 큐티에 대해 경고하셨다. 위험할수도 있다고. 그런데 뭔가 조금 자격지심 섞인듯한 말씀이기도 했다. 분명 내가 잘 분별하고 대처해야할 문제일 것이다. 아무런 공동체도 없이, 목회자의 양육도 없이 이렇게 혼자 묵상을 하는 것이 과연 선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나는 이 시기를 견뎌내고 싶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다.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있다. 내 신앙은 이론적이기 보다 실존적이다.


다시 처음부터, 다윗이 피를 흘림으로 인해서 성전공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영적후사인 자기 아들 솔로몬을 통해 일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소중히 믿으며, 성전건축에 필요한 자재 준비에 힘쓴다. 자기 자신에게 허락된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한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곳은 어디인가? 요즘들어 내 삶에 있어서 완전한 젊음은 곧장 지나가고 나에게 있어 주어진 한계와 그안에서 내가 추구해야할 최선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삶은 무한한듯 여겨지지만 유한하다. 언제나 우리는 앞을 향해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고, 사람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그 스스로가 자기자신을 생각할 때 그 생각은 물리적 한계에 갇힌다. 그래서 더 자라나지 못한다. 다윗에게도 한계가 있듯, 나에게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그에 맞는 비전이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예수그리스도를 날마다 묵상하고 영적인 거룩을 사모하며 은혜안에 거하기를 기도해야겠다. 나는 주님의 사람이다. 오늘도 부족하지만 말씀을 묵상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심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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