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계산해야 하는 것
2020.04.08 묵상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눅23:27-31)
예수님이 당하는 고난을 보며 슬퍼 우는 여자들을 보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나를 위해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식들을 위하여 울라고.
예수님은 늘 관점을 달리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세속에 속한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해가 안가는 말씀을 하신다.
죄가 없는 예수님이 형장에 끌려가며 맞고 모욕당하고 죽음에 이르는 그 광경을
보면서 슬퍼하고 우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나. 예수님도 그 마음을 분명 아실 것이다.
그러나 감정적 동요와 본질의 중요함은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늘 본질을 놓치고 산다.
예수님의 고난은 정해진 것,
십자가의 심판을 당하고 나의 죄를 대속해주시기 위해,
영광의 면류관을 쓰시는 사명이다. 이루어져야만 하는 일이다.
남은 과제는 나의 믿음이다. 당도한 심판 앞에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나와 내 자식들이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아 주님으로 기뻐하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천국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내 코가 석자다. 그리고 나와 함께 지금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지않고 현재의 교만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문제다.
자기 죽음을 앞두고 타인의 죽음과 타인의 죄를 걱정한다는 것.
끝없이 이타적인 생각과 철학을 가진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십자가의 도와 말씀의 능력은 도덕이 아니고, 변함없는 진리다.
우리는 이 문제 앞에서 철저히 계산해야만 한다.
망대를 짓는 건축자들과 같이, 계산하고 움직이라고 말씀하신다.
짧은 육신의 인생을 마감하는 날은 반드시 오고, 내가 추구해야할 흔들림 없는 기둥은 무엇인가.
말씀의 기둥이고, 믿음의 기둥일 것이다.
나는 내가 현재의 삶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불이익과 고난을 생각하며
예수님을 원망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 했던 것을 본다.
지금도 물론 쉽지않다. 전적으로 믿음없음에서 나오는 태도일 것이다.
문제는 나의 고난이 아니라, 지금도 예수님을 모르고 고통받는 삶을 지속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영혼들이다.
삶의 이면, 이 지구상의 이면을 보는 지혜가 우리에겐 무척이나 희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