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을 마주하다

당신에게 주님을 증거하는 삶이란

by Daniel Josh

20200411 말씀묵상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52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53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54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눅23:50-56)

요셉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불의한 법에 굴복하지않고
예수님을 죽이자는 공회의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다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신다는 고백은
드러내놓고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주님을 신실하게 바랐던 주님의 제자였던 것 같다.
인간의 나약함으로는 행하지 못하지만, 주님의 성령을 구하며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언젠가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날이 오는 것 같다. 아픈손가락을 보듯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요셉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나서 그 시체를 달라고 빌라도앞에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나 다름없는 일을 하게된다.

두려움에 떠는 다리도, 쫄깃한 심장도 주님이 하시고자 하실 때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고백하면 주님이 함께하시고 그 일을 이루게끔 인도하신다.

나는 주님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있는가?
복음을 부끄러워한 적은 없다. 잘못된 복음의 모습이 만연해질 때,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오해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듣기 싫어할 때에 마음이 쪼그라들었던 적은 몇번 있었던 것 같다.
착가했던 것 같다. 복음을 부끄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사람들 앞에서 이전에, 주님앞에서 나의 모습을.
사람들 앞에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복음앞에 떳떳해지는 것이 어렵다.
후자가 안되기 때문에 전자가 떳떳한 신앙의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요셉처럼, 나의 삶은 아직 부족함 투성이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주님이 맡겨주신 영혼들에게

사랑과 헌신을 감당하는 것 조차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 앞에 서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 앞에서

나의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 은혜의 폭포수를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의 시체를 보고나서 여자들은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명은 끝이났고, 결국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구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믿고 적용해 순종하는 삶을 우리가 사는것이냐 이다.

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잘 적용하고있는가?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아픈 손가락은 있다. 바로 우리 누나이다.
5년째 아픈 몸을 가지고 혼자 밖에도 나가지 못하며 생활하고있다.
나는 누나집에 가야한다. 누나집에 가서 누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망상증과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누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어야한다.
나는 그게 참 어렵다. 마음에 좀처럼 동기가 부여되질 않는다.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누나를 돌볼 때 마다 엄마가 용돈을 주겠다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나 집엘 가지않는다. 부정적인 에너지에 내 스스로가 잠식될까봐 그랬다.
매일 같이 오는 같은 내용의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한다. 보통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렇게 나를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내용의 메세지들을 보내온다 라는 내용, 망상이다] 문자메세지에 답장을 하지않는다.

누나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내 삶이 순식간에 피폐해질것만 같다. 엄두가 안난다.
하지만 늘 말씀을 묵상할 때 마다, 누나의 얼굴이 마음에 밟힌다.
내가 적용해야하는 나의 십자가인 것이다.

누구나 말씀을 읽으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얼굴이나 해야할 일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겐 나의 누나가 그렇다. 당신에게는 어떤 것이 십자가인가.
주님은 나를 괴롭게한다. 하고싶지 않은일을 감당하게 시킨다. 힘들다.
무시하고싶다. 그렇게 완강하게 거부하다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아뢰면
곧 나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조금씩 부여해주실 것을 믿는다.

주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주셨다. 물과 피를 흘리신 생명을 주셨다.
그걸 믿는다면, 그 감동이 나에게 임한다면, 그 성령의 동행이 나를 인도해
주님이 옳다 여기시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시길 원한다.

오늘 밤은 예수님앞에 진심을 다해 기도드리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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