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큰 우상, 그러나
2020413 말씀묵상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24:13-27)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 사이에 어느샌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동행하셔서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그가 자기들이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인간은 영적인 동물이다. 육체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인식하는 것 이외에, 영적인 눈으로 역시나 세상을 본다.
이 영적인 눈은 전적으로 주님의 권한 안에 있다. (물론 육적인 눈 역시 마찬가지다.)
주님이 알아보게 하시지 않으면 절대 알아볼 수 없다.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핸드폰을 찾는 사람처럼
정신없어보이지만. 인간은 그렇게 한계가 분명한 존재다. 그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이 두 사람이 정신이 없어서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들의 눈을 가리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내 눈을 주님께서 가리시면 나는 아무것도 주목해서 볼 수 없다.
말씀을 사모하고 들음에서 믿음이 난다고 하였으나. 말씀묵상을 꾸준히 하는 자기개발형 인간이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런 인과적인 논리로 설명될 수 없다. 말씀을 아무리 보더라도
주님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성경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옛 히브리족속, 유대인들의 역사를
살펴보는 사람들에게 말씀은 그저 학문 및 연구의 대상일 뿐이다. 오직 주님에게 긍휼을 입은 사람들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죄를 돌아본다. 자기 마음 속에서 뜨겁게 일어나는 은혜를 느낀다.
주님의 전적인 은혜다. 말씀을 읽으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것이 무엇을 위한 일인지를.
나는 말씀을 듣고 읽으면서, 하루의 일정을 소화한다는 느낌을 가지고있지는 않은가? 나는 무엇을 위해
말씀을 읽는가. 주님을 내 삶으로 초청하고 맞이할 준비가 나는 되어있는가? 나는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는가?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나의 삶이 무익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알고있는가.
나는 왜 말씀묵상을 시작했으며, 왜 혼자서 묵상하며 끝내지 않고 사람들과 공유하는가.
그리고 이것을 모두가 볼 수 있는 글 플랫폼 브런치에 올리고 있는가. 그 과정에 내가 바라는 욕심이 섞여있지
않았는가. 주객전도가 된 것은 아닌가. 주님을 향한 순수한 열망이 있는가.
지금 내가 말씀을 적으면서도 솔직히 말해 내 마음 속에는 이것이 하나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고 엮여서
책으로 나오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아카이빙하기 좋게 기록해두고
이것을 브런치에 연재하는 것이다. 브런치에 지속적으로 글을 올려 연재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우상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 우상의 허망함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실패란 없으며, 하나님의 사람에게 성공도 없다는 것.
하나님의 사람에게 자기 주관적인 기준에서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님이 전적으로 인도하시고 통치하시는 성전이 되는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걸 알고있다.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모든 나의 커리어와 모든 지금 내가 하는 일들, 나의 이력, 나의 직업, 나의 재능,
나의 돈, 나의 연인, 나의 가족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님앞에 무익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런의미에서 지금 내가 묵상하고 기록하는 과정은 결국 최후까지 남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순간에도 주님의 전적인 은혜가 나를 말씀앞으로 인도하셨고, 나의 우상을 깨닫게 하셨고,
집착을 버리게 하시고. 생각을 고쳐먹게 하시고. 말씀을 묵상하게 하신다. 내 죄를 깨닫게 하신다.
주님을 더욱 강하게 열망하도록 나를 고치신다. 이 은혜가 지금 나에게 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눈이 가리워 예수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 은혜가 얼마나 무겁고도 소중하며 감사한 것인지를. 나같은 사람이 무엇이길래, 이런 큰 은혜를 베푸시는지.
성실하지도, 잘생기지도, 능력이 출중하지도, 마음이 착하지도, 머리가 똑똑하지도 않은 나를 기억하셔서
그 옛날에 눈물흘리며 했던 기도를 기억하셔서 언약하시고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이렇게 나를
인도하고 계시는구나 싶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은 다만,
주어진 자리에 충실하고 열심히 순종하고 싶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사랑을 나누고 성장해가기 위함이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이 범사에 강건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은혜받은 이 귀한 것을 모르거나 까먹거나한 나의 사람들에게
귀하게 전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