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로 영원히 살 것 처럼 굴지 마라
2020.04.17 말씀묵상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4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
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7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 금 우상을 그 날
에는 각 사람이 던져 버릴 것이며
8 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9 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사31:1-9)
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지않고 자기의 우상들을 섬기며, 자기 지혜를 의지한 대가로
심판을 받는다. 앗수르가 그 매개다. 그런 와중에 또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려 하지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닌 애굽에 원조 요청을 하는 행위는 또 다른 죄를 낳는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에게만 관리를 받는다. 세상의 권세에 굴복될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세상은 하나님의 구속사, 그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세상은 보여지는 것이 다
인것 같지만 보여지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힘과 시스템과 원리에 의해 벌어진다.
하물며 세상사 사업조차 그런데, 이 세상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볼 수 있는
지혜가 믿음의 사람에게는 아주 긴히 요구된다.
나는 하나님의 소유다.
그동안, 오랜기간, 자유자인것처럼 살았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나 혼자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았다. 좋은 많은 것들이 내 주위에
있는 듯 했고. 나는 그것들을 누렸으며, 가치있는 인생에 대해 고민하며 그 고민하는 바를
실천하고 성취하는데 전력했다. 세상은 넓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많으며, 그들사이에서 어느새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도 비교하고 경쟁하며 짓눌리는 경험들을 하게된다. 그리고 고민한다.
어느 것이 나를 위해 가장 유익하고 즐거운 삶일까.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유익한 대화들을 나누었다. 답에 더 근접하는 듯했다. 그러나 뭔가 뚜렷한 해법을 찾고 그것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보다는. 둥근 원을 지속적으로 돌며 어디가 가장 높은 지점인가를
찾는, 의미없는 과정의 연속처럼 느껴졌다. 내가 잘되기만 을 바라며 사는 것도 엄청난 의지력과 고민,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행복하고 싶으니까, 더 많이 가지고 싶으니까.
뚜렷한 답은 떠오르지않은채로 시간이 흐르니까 점점 지쳤다. 살아있으니까, 최선을 다해야하고
또 나는 이 현실세계 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서 버텨내야하고.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호르몬에 지배받아
앞으로 달려나가기를 반복하는데. 전지적 시점에서 이것을 바라보니 터무니 없이 어리석어보였다.
다시한번 깨닫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 나는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
이미 나는 나의 목숨값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그 가치를 증명받았다는 것. 그 사실을 믿기만 믿으면
구원에 이르는 그 영광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 내 존재자체가 주님의 자녀가 되는 그것보다 지금
이 작은 현실 세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영광은 없다는 것. 이 진리가 자기합리화 내지 도피성이 되지 않고
진실로 받아들여져서 현실의 나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 되기까지 꽤 오래 걸린 것 같다.
지금도 역시 완전하지 못하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 사람인가? 나는 왜 살아가는가? 사람의 인정이 나한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이 나에겐 은과 금으로 만든 우상처럼 나를 짓누른다. 그만큼 남들과 나를 철저하게 비교하고, 그 속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기본적으로 서로를 짓밟고 올라가기에 급급한 경쟁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자연 규칙이다. 그런 나도 온전한 사랑을 갈망한다. 모든 문제는 온전한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
일종의 질병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영적인 사람인데, 죄악에 가려서 그 영적 공급을 제대로 받지못해 영혼이
죽은 상태로 세상을 산다. 그래서 영적결핍에 따른 요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표출되어 잘못 사는 것이다.
사람의 인정으로, 내 가치의 증명으로, 많은 돈을 버는 것으로, 많은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서울대교수가 쓴 이 책에서 말한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 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
평생 원했으나 가질 수 없었던 명예에 대한 아쉬움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
이라면, 영원히 살 것 처럼 굴기를 멈출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정념으로 부터 다나마 풀려나갈 수 있는 방법. 내가 죽음을 앞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인생이 전부인 것 같아보여도, 우리는 물질세계 그 너머를 경험하지 않고도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이다.
우리가 정말 물질세계 안에, 그 하부에 소속된 인간이라면,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을 똑바로 인지할 수
없을 것이다. 사는동안은 사는데 충실하다가, 죽으면 소리없이 죽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인간이 아니다. 한 마리의 동물이고, 한 개의 떡에 불과하다. 인간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세계를 이루는 육체가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 때문에 내가 이 물질세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하는 게 가능하다.
사단은 자꾸만 나를 속이고 넘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더 이상 속지 않는다.
말씀을 의지하고 나의 하나님을 의지한다. 영원히 육체로 살 것처럼 생각하느라 정작 나의 한계와
생각해야하는 본질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님으로부터 공급받고 실행하자.
오늘 하루, 주님을 생각하며 그와 동행하지 못한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무엇 을 한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주님의 소유, 나는 하나님의 사람.
주님의 사랑으로부터 나를 절대로 끊을 수 없다.
주님은 나를 도우시는 손. 나는 그 손을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