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조건들로 부터 도망치는 것
2020.04.27 말씀묵상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사40:1-11)
선지자를 통해 주님은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신다.
노역의 때가 끝났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고. 장차 결국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고.
여호와의 영광을 간절히 바랐는가? 고통받은 백성들은 왜 고통을 받아야만 했으며,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기에 기쁨과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일까?
노역의 때를 견디어 낸 것들에 대하여, 말씀에 의한 죄의 자각이 있어야 한다. 나의 죄에 대한 자각이 없으면, 삶이 피곤하고 괴로운 모든 이유에 대한 해석이 되지 않는다. 자기가 괴로웠던 시간들에 대한 해석이 되지 않으면 결국 말씀선포와 하나님의 임재에 의한 축복과 영광도 누리지 못한다. 기준이 부재하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
기분이 좋을 때, 기분이 나쁠 때, 일이 잘 풀릴 때,
일이 꼬일 때, 와장창 깨지고 박살 날 때,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르면 조금은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그런 다양한 때들. 처음엔 너무 아프고 괴로워서 허덕이다가도, 조금씩 조금씩 인생이라는게 이런거지 하며
인정하고 무뎌져가다보면 대충 어떤식인지 알게된다. 내 삶이 지금 70억 인구 평균의 어디쯤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자의대로 해석하고, 해석되지 않는 것들은 내버려두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다.
삶은 살아내는 것이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삶의 의미가 다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삶은 언약이고, 구속사이며, 명확한 목적지와 방향이 있는 세계다.
머리로 알고있는데도, 믿음이 없어 그렇게 헤멘다.
나는 요즘 부쩍,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을 느끼곤 한다.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닌데, 나름대로 자기자리에서 잘 헤쳐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알지못하는 미래의 결과에 대해서, 혹은 오지않은 어떤 가능성에 대해서 지레 불안을 느낀다. 눈에 보이는 모든 현실들에는 충실히 대응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사실 어느정도 정신승리 랄까, 그런 것들이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한 수순이다.
말씀은 정신승리의 수단이 아니다. 단, 우리가 사는 인생에서 오지않을 미래와 현재 자기자신의 삶에 대한 재단과 비교, 그에 따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정신승리를 의탁할 무언가를 고대한다. 그리고 그 고민 교차로에서 철학을 발견하고,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고, 종교를 발견한다.
조금 더 많은 돈과 직위와 갖가지 다양한 요구들로 부터 피로해진 자기자신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그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내 이야기다. 스트레스 그만 받고 싶다. 나를 누군가와 비교하며 다그치는 일도 그만하고싶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하다.”
나를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나의 조건들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이유에 대한 말씀이다.
살아가는 이 곳 세상에 큰 미련을 두지않고 언제든
채비를 갖추고 떠날 이방인처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그런 소망을 준다. 지금은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져야 할 것들이 많아 그에 대한 정신적 부담이 커서 이 말씀이 나에게 의지할 도피성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다음에는, 내가 잃을 것이 많아지면 또 어떻게 될지. 나는 나를 믿을 수 없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결정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주님이 나에게 이 모든 축복과 은혜를 베푸셨다.
그치만 이 모든 것들은 곧 흙으로 돌아갈 것들이다. 마르고, 시든다. 영원한 진리 그 토대위에 삶을 새롭게 세워나가야 한다. 나는 그 누구 앞에서도 쫄지 않는다.
끝으로 이 모든 말씀들을 크게 외치라고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해석되지 않는 삶을 붙잡고 어거지로 살아나간다.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로 공허와 불안의 고름이 맺혀 꽉 막혀있다. 요즘 따라 한 때 신앙인이었던 사람들을 알게된다. 그들과 말씀묵상을 나누면서 서로 위로하고싶다. 말씀이 해석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가 듣는데,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믿지않는 사람들에게도 긍휼의 마음이 생기려고 한다. 기도한다. 내가 그들에게 신앙인의 삶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그리고 주의 복음이 그들의 삶을 회복시킬 수 있기를. 복음의 사명으로 살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생명이 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