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과 우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아라

by Daniel Josh


2020.05.03 말씀묵상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사44:15)

사람이 만드는 종교, 사람이 만드는 우상.
자기 자신의 정신승리를 위하여 만드는 우상.
인간은 물질 이상을 사는 영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허구에 의미를 부여하여 실제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돈이라고 부르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하는 화폐의 가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형성된다. 구성원들의 믿음이 전제되어야만 가치를 지닌다. 원래 돈이라는 것의 가치는 아무것도 아닌 허구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라는 배타적 경계선을 긋고 법률을 제정해 구성원을 질서로 통제하는 것은, 실재하는 그 구성원들의 ‘국가는 존재해야 한다’라는 믿음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그 믿음이 없이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미 21세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과 국가의 부재를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만든 허구에 우리는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살고있다.

일반 사람들이 ‘종교는 아편이다’, ‘종교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든 이념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도 인간의 이 모순적인 행동을 꼬집으신다.
왜 똑같은 나무를 가지고 떌감으로 써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남는 것으로는 조각상을 깎아 만들어 우상을 삼을 수 있는 걸까? 이 논리상의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기가 만든 신상에 자기가 절하는 꼴이라니.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에게 절을 한다면 이해가 되겠는가?

하지만 이것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짓는 범죄의 매우 일반적인 원리다.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꾸만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잊는다. 내 가치를 잊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 가치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내가 만들어낸 가치가 나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다시 그 가치에 따라 난 휩쓸려간다. 세상의 구성원으로, 사람들의 인정과 소속을 받으려고 나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간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깨우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구성요소들. 나의 사람들, 나의 연인과, 나의 글, 나의 그림, 나의 책, 그리고 나의 성취들, 앞으로 내가 추구해야할 나의 행적들. 이런 것들이 나의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경계해야 한다는 것. 진리를 소유한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두려움이 없이 살고싶다. 감정의 노예가 되고 사람의 노예가 되고 내가 이루어야 할 목표들과 오지않을 미래에 대하여 노예가 되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다. 주의 말씀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한다.
주님의 사람으로 살고싶다. 주님을 사랑하며 살고싶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가? 나는 주님의 기뻐하시는 사람인가? 나는 주님의 기뻐하시는 제자가 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지금도 두려움을 완벽히 떨쳐내지 못한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 열정을 싣는게 아니라 지금 나를 구성하고 있는 나의 요소들을 지켜내는데 아등바등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부터 적용해보려고 한다.
말씀으로 나를 깨우쳤으면, 내가 주님을 기뻐하게 만드는 종이 되기를 기도해야한다. 성령을 허락하셔서 나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나의 목표가, 나의 연애가, 기타 나를 두렵고 떨게 만드는 것들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오직 주님만이 나의 주인되시도록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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