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을 위하여 ~한다

하나님이 있어 다행입니다

by Daniel Josh


2020.05.07 말씀묵상
9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11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48:9-11)

성도에게는 연단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잘 모르겠다.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인생의 고난은 하나님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나님 탓하지말라고 할때도 있는데, 어떨 때는
하나님의 연단을 잘 견디라고 한다. 잘못 오해하면 하나님은 유리할 때만 골라서 말이 되게만드는 분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인 나로서는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믿어야한다.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선하시고 나에게 영광에 이르는 계획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넘어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결국 넘어지고만다. 인간은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기 때문에 그렇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훈련이 필요치 않으니 나를 귀찮게 하시지 말라고 하는 것은 교만이다.
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사랑이 있는 게 아니라 십자가와 고난이 따르는가. 그렇다면 왜 예수님을 믿는 것인가. 무엇이 좋자고. 이런 고민을 한다. 하지만 이건 너무 인본주의적인 시각이다. 인본주의적인 시각에는 답이 안나오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 많다.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나는 태어날 때 부터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입고 태어났다. 그래서 이 몸 밖의 경험은 해보질 못한다. 그래서 나는 곧 세상의 전부라는 인식을 하게되고. 나의 입장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지능이 자라고 사회를 경험하면서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이 세상은 내가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큰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의 일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단 한개라도 있는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은 세상에서 아주 극히 적은 범위에 속한다. 나는 태어나 보니, 우리 엄마 아빠의 자식으로서 존재한다. 이미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많은 것이 결정되어 있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따라야 할 질서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이 없더라도.

태어나 보니,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란다. 믿어보란다. 이것이 한동안은 엄청난 불행처럼 느껴졌던 적이 있다. 왜 다른 사람들은 평온하게 자기 인생 잘만 살아가는데, 나는 왜 비겁하게 숨어서 살아가야 하지. 왜 사람들앞에 신앙인이라는 이유로 편견에 씌워져 바라보이게 되고, 괜히 눈치보면서 설설기어야 하지. 왜 다른 사람은 심플하게 자기 인생이 잘되기만을 바라보면서 살면 되는데, 왜 나는 영혼구원의 문제를 고민해야하고, 내가 잘되는대로 잘되는 것에 집중도 못하고,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의 귀한 것들을 내려놓고 살아야 하지.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님을 믿는 모든 것이 제약처럼 느껴지곤 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면서, 나의 맘대로 내가 살아가는 것을 담담히 지켜보시지 못해서 안달인걸까? 왜 나에게 그분의 주권을 사용해서 다스리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구시는 걸까? 왜 이런 모든 이야기들을 쓰면서도 나는 하나님 앞에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수그러들까?
억울하지않은가? 신앙인들이여. 당신의 신앙은 당신이 선택했습니까?

아직 내가 모든 훈련을 다 받고 천국올라가길 기다리는 완전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니고 여전히 하나님의 길을 따르고 말씀을 듣는데 장애가 있는, 죄악 된 존재라는 것을 안다. 아마도 평생 회개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존재가 나에게 방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나 자신만의 의지로 살아나가기에 세상은 너무 위험하고, 공허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이 커다란 세계의 커다란 폐허같은 공허 때문에 나는 숨쉬기가 어려울 것이다. 끊임없이 내 주위 사람들과 경쟁하고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데, 불안을 느끼다가 스스로가 무슨 행복을 추구하는지 고민하다가 무한한 공간의 무한한 자유로부터 소외된 자기자신을 발견하고 철학적인 고민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이 나오지 않는 인생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고 씨름하길 반복하다 죽겠지. 죽을 때까지 답을 발견하지 못하고. 왜냐하면 구속받는 걸 싫어하니까 교회나 절이나 이슬람이나 종교는 질색하겠지. 내가 내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서 모든 것의 옳고그름을 분별하려고 하겠지. 내가 제일 잘난 존재가 되기위하여 모순적이게도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길 반복하겠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고 이기심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서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키워나가게 되겠지. 아무도 믿지 않겠지.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 영혼의 회복이 일어나고 생명을 얻게 되는 그런 헌신의 가치를 믿지 않게되겠지. 생각해보면 하늘과 땅을 다얻어도 하나님을 잃어버린 삶은 상상할 수 없이 비참하다.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의 영광을 위하여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를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다. 스스로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나를 향한 연단과 훈련의 손길을 멈추시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분에게 선택되어 지금 이곳에 서있다. 멋있지 않은가? 누가보면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잘난 척하는 것 같다고 보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찌됐건 그들에게 신앙과 종교의 문제는 선택의 영역이니까. 나는 이 구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저런 말을 하는 삶을 사는 건 너무도 피로한 것이다. 사람이 가끔, 자기자신의 긍지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어떤 약속을 지키고 이런 삶의 고백을 하는 것을 본다. 그래, 저 말을 내가 한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나의 영광을 위하여 화내기를 더디한다, 나는 나의 영광을 위하여 너와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나는 이런 말을 감당하지 못하겠다. 내스스로의 가치를 격하시키는 게 아니라, 나는 나를 성찰해보았을 때 저런 품격을 지니기 위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못된다. 저런 말씀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나의 외부에, 절대적인 신의 모습을 하고 나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삶의 목적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내 안에 나의 목적이 있어서, 삶의 주인이 되고 모든것을 감당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나는 매우 독립적인 사람인데도 그렇다. 인간은 너무 약하다. 하나님이 필요하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하고. 그분의 다스림이 필요하다.

오늘도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로 언약하신 주님을 믿고 나아간다. 사랑해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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