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해진 나와 내 친구들에게
2020.05.13 말씀묵상
[사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하는 말씀이다. 우리 주님이 복음 전하는 자의 삶과 그 모습, 그 영혼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다. 어제는 그런 고민을 했다. 하나님의 일은 인격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효율이 중요할까? 효율이 전혀 중요하지 않을까? 인간사는 문명과 기술의 발달로 비약적인 진화가 가능했다. 그것은 감정이나 마음, 인격과 비례한 결과는 아니었다. 착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듯, 역사상 많은 발전을 가져다 준 기술의 발달은 이성과 논리, 창의성과 개연성에 의해 이루어졌다. 오죽하면 19-20세기는 과학, 이성만능주의에 젖어 낙관적인 미래를 전망하지 않았는가.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가능했다. 이런 지적인 소양 역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일 진대, 과연 복음전하는 이 사역은 어떠한가? 디지털시대를 맞이하여 복음은 어떻게 전하여야 할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사람을 부리지 못하시고 온 세상으로 하여금 전 우주의 통치자이신 그분을 알게끔 못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전제 하나. 그리고 거기서 성립가능한 논리는,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제자,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인격적 교류와 양육이 더 중요하다는 것. 복음을 전하는 일은, 법인회사에서 일하듯 이루어지는 실적제가 아니라는 것.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라는 것. 그 동안 나는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열매가 없을 사역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 돈을 투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답답했다. 교회를 정착하지 못한 이유에 그것도 한 몫했다. 나의 교만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러나 과연 지속가능한 열매와 대안을 생각한 사역에 대한 고민이 전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합리적 이성 또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과 소양이며, 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고민하며 생각하는 연장선에서 이런 방법론들을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내가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전하는 일에 대하여 고민하기에, 나를 쓰신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고민을 한다. 주님은 나를 사용하셔서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실 것이고, 나의 고민 그 자체를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걸음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실 것이다.
나는 기존의 교회시스템에 불만이 늘 많았다.
그러나 나의 교만을 회개한다. 그러나 그 불만이 결코 무의미하지않다는 것을 안다. 많은 청년들이 불안한 영혼을 가지고 헤매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 많은 숫자가 교회를 다녀본 적이 있고 예수님 이라는 분에대해 들어본 사람들이다. 가족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그들은 신앙을 포기하고 잊어버린 채 산다. 나는 그들이 무척 안타깝다. 나를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불안한 영혼은 무엇도 의지하지 못한다. 21세기는 겉으론 반짝이지만 안으로는 영혼이 한없이 메마르고 괴로운 시대다. 신종 전염병과 소비위축, 고용위축으로 사회는 그어느때보다 몸살을 앓고있다. 나는 내가 교회공동체를 갖기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고있다. 이 시기에 같은 종교인 사람들과의 친목형성을 위해 나가는 교회예배의 자리는 내게 너무도 사치스럽게 여겨진다. 당장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 같은 현실속에서 복음이 삶의 가장 큰 소망이 된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미소짓는 얼굴과 세상의 아류를 따라가는 콘텐츠 개발을 볼때마다 한숨이 쉬어진다.
대안을 생각한다. 앉아서 불만을 제기하고 나를 높이기 위해서 툴툴거리는 것이 아니다. 대안이 되는 교회공동체를 생각한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초미의 관심사다.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시지 못하는 그 영광스러운 일, 거기에 내가 쓰임 받길 원한다. 긍휼의 마음으로 나의 친구들을 보며 그들이 범사에 잘되길 기도한다.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할 때에 자기 죄가 깨달아지고 삶의 해답이, 영혼의 해답이 비로소 보인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다. 당장 나의 곁에 있는 믿음을 잃어버린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한다. 하나님이 나의 복음전하려 산을 넘는 발걸음을 축복해 주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