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나에게 찾아오시는 사건이므로
2020.05.25 말씀묵상
[사64: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한다. 주님께 아뢴다. 주님, 나는 주님의 백성입니다. 내게서 주의 얼굴을 가리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기본이 악한 죄인이라서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영혼들입니다. 주의 얼굴을 가리지 말아주세요. 나에게 고난이 오고, 쉽지않은 마음의 범람이 찾아오면 그것은 주님께서 나에게 마음을 두드리시고 찾아오시는 사건이라는 믿음이 나에게 생기게 해주세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의 하소연을 들었다. 엄마는 아빠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곤한다. 그러면 나는 듣다가 이야기한다. 엄마, 너무 자기 억울한 것에만 집중해서 해결될일이 하나도 없다고. 억울하기로서는 예수님이 가신 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조금 떠올려보라고. 위로가 조금 된다고. 물론 나는 이렇게 아무런 공감도 경청도 없이 대안을 폭력적으로 제시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한 것은, 내가 요즘 그렇게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또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무 억울하고 힘든 일이 찾아올 때에는, 예수님을 붙들 수 있는 사건이 생김에 감사하라고. 이게 무슨 막말인가 싶다. 그러나 진짜로 그렇다. 황폐해진 나의 마음과 심령에 주님은 단비가 되어 찾아오시곤한다. 주님은 잘못한 것이 없으시나, 나의 완악한 마음이 주님의 은혜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나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진노하신다. 그리고 나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찾아오신다. 인생은 구속사로 이루어져있다. 매일의 사건 역시 그렇다. 일상의 소소한 삶, 모든 부분들이 다 주님의 인도하심 아래에 이루어진다. 나는 그것을 얼마나 믿는가. 얼마나 기도하고 얼마나 감사하는지가 그것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나의 믿음에 따라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은 나에게 믿음의 사건이 되기도, 우연의 일치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하나님과 썸을 타는 이 관계의 얕음을 빨리 청산하고 싶다. 나는 주님의 백성이므로, 나를 다스려달라고 말씀의 고백처럼 주님께 청원해야한다. 평온한 삶은 자꾸만 후순위로 믿음을 미룬다.
나는 꿈과 소망이 있는 편이다. 이지성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 그가 어렵게 살때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 인문학하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많은 좋은 일을 실천하고 있고 또한 많은 책을 집필하며 살고있다. 나 역시 주님앞에 나의 삶의 기로가 달려있다. 성공한 삶을 살고싶다. 쪼들리며 살고싶지 않다. 그러나 나의 능력,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와 기회들에 대하여 불안함이 엄습하곤 한다. 사람인지라. 주님앞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나를 사용해달라고. 그리고 그 다음은, 내가 성공하고 말고를 떠나서 나는 주님의 백성이라는 고백이 터져나오면. 성공이다. 내 영혼의 갈급함과 불안 속에서 나의 요구가 관철되기를 기도하다가 그 기도가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더불어 나의 심령도 변화한다. 그리고 나의 심령이 변화되어야, 나의 그릇이 깨끗해져야 하나님은 나를 들어올리셔서 쓰실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내가 나의 교만함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 이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래서 나는 더욱 주님앞에 매달려 기도하려고 한다. 주님 나를 사용해주시기를. 주님 내 매일의 삶에 감사와 기도가 넘쳐흐르기를. 축복해주시기를. 나로 하여금 가난한 자 핍박받는 자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해주시기를. 기도한다. 성령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