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정신승리인가? 명상인가? 마음관리인가?
2020.06.11 말씀묵상
[롬8:5-6]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오늘 나는 교통사고를 냈다. 가벼운 교통사고였고 인명피해도 없었으며, 심지어 차 손상도 없었다. 첫 신고식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화려하지 못했다. 그치만 마음속으로는 너무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차를 계속 운전하게 되지 못할까봐, 상대측에서 말도안되는 요구를 해나올까봐 모든것이 걱정되었다. 그러다가 좀처럼 진정되지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다이어리를 펼쳐들어 몇 글자 적다보니, 주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나에게는 주님이 필요했다. 주님찬스. 힘들때만 찾는다고 세상친구들은 비난한다. 주님역시 그러시지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엔 내가 너무 말도안되는 죄인이라 주님에겐 그런 기대가 없을 것이라는 걸 알아서, 그냥 말씀을 읽었다.
말씀을 읽다보니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하고 위태로운 건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 차사고가 신경쓰이는게 아니라, 무슨 일이든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면 신경을 쓸수밖에 없는 그런 육신의 상태에 놓여있었다. 사람관계, 내 일, 사고, 그리고 행사들 등등 모든 것들이 지금 나에게는 버겁고 위태롭다. 그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동요하고 마음의 칼날이 곤두서게 된다. 정혁이랑 다퉜을 때 진즉 큐티를 했어야 했다. 내가 왜 지금 예민하곺 평안하지 못한지를. 더 큰 것들이 터져야 알게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렇다. 나는 지금 부유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며칠동안, 아니 몇주동안 읽지 못했다. 계속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경건활동이 결국 나를 이지경으로 몰았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나는 이 세상을 감당해내지 못한다.
세상사람들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약하다고 말한다. 자기는 그 무엇에도 잘 의지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이것도 어쩌면 문화차이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그들도 어떻게든 눈 앞의 삶을 살아내니까. 나는 그전에 하나님을 찾고 나의 아픈 마음들을 토로해내고. 그 전에 인간이 어떤 사고 어떤 갈등을 만나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지금 만족한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나는 하나님을 필요할 때만 찾으니까. 정신건강을 위하여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마치 명상하듯? 요가하듯? 마음의 평정을 그렇게 찾으려는 것일까. 헷갈린다. 무조건적으로 틀린말이라고 보긴 어렵다. 나는 분명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할 때 하나님을 찾고 말씀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최근에 나는 찬양의 가사에 감동했었다. 실로암이라는 찬양이다. 그 멜로디가, 그 가사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 느꼈다. 신앙을 가지고 살면서 힘든 일을 만날때 마음의 평정을 찾기위해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평안이 찾아온다. 그런 효용이 있다. 근데 내가 회복하게 되는 방향은 잠시 그 문제를 잊어버리거나 내가 더 단단해지는 그런게 아니다. 믿음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믿음인데, 말씀은 힐링이 되는 좋은 글귀를 모아놓은 사전이 아니다. 인문학 책을 읽으면서 내가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초점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건 영적변화가 일어날 때에만 가능하다.
영적인 생각을 하는것. 내가 평온할 때 이 말씀은 가학적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것들을 누리지 않고 누군가를 배려하고 누군가를 양보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내가 희생하고. 손해보는 일만 나열된다. 이런 것들을 하면서 내가 좁은 길로 가야 십자가의 삶을 성취할 수 있고 구원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그게 믿음의 삶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내가 유리한 쪽으로 신앙을 어거지로 끼워맞추는 건 아니다. 신앙은 내가 적절한 때에 보면서 위로를 받는 타로카드가 아니라, 계속해서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잊어버리는 그 영적원리를 때마다 깨우는 것이다.
그리하여서 내가 얻는 건, 내 인생의 바른 방향성이다. 그리고 거기엔 육신의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또한 포함된다. 결국 하나님이 나에게 전적으로 허락하신 이 상황속에서 나는 어떤 행동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말씀을 듣지 못하면 방향을 깨닫지 못한다. 육신의 일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본문 말씀은 이야기한다. 나는 왜 말씀을 읽는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삶으로 옮겨가기 위해서이다. 바로바로 나의 삶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가는 것은 아니다. 날마다 날마다 씨름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에 대행여, 십자가의 의미에 대하여, 찬양이 나에게 주는 감동의 묵상에 대하여 고민해야한다. 나는 오늘 다시 주님을 만났고,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고, 심지어 주님을 믿는 통에 어떤 고난을 당하더라도, 나의 믿음과 주님에 대한 사랑이 커서 모든 것속에서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