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억울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역설적인 진리의 세계

by Daniel Josh


2020.06.03 말씀묵상
[롬3:23-24]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중요한 문장은 이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라. 모든 사람은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때, 영광스럽지 못하다. 인간 개인이 스스로를 영광스럽게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착각은 자유’라는 말 처럼 이는 믿을게 못된다. 이 세상에 진정 객관이라는게 존재한다면, 절대자의 시선이 객관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각자 소유한 주관으로 판단하면서 이를 객관이라고 우기고 있을 뿐이다.

다시 돌아가서,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 인생을 조금만 살다보면 느낄수 있다. 내가 얼마나 판단력이 흐릿한 인간인지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졌을 무렵 내가 저지른 실수들을 생각한다. 상상하기 조차 버거울 정도로 부끄러운 것들이다. 그 이유는 내가 영광스럽지 못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만 모르고,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가 떨릴 정도로 부끄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자기 죄에 관대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판단받는 것이 싫어서 남을 판단하는 자가 되어버린다. 나를 제외한 나의 주변 타인들의 행동과 생각과 말이 부족하고 부끄럽고 모자라다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 지적질을 하기시작하는데, 정말 답이없다. 그렇게 온동네 모든 사람들에게 화살을 겨누고 난 뒤에는 내가 제일 억울한 사람이 되어서 고통스러워 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억울한 사람이 자기 고민을 토로하면,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달래준다. 최근에는 나의 엄마가 그 억울한 사람이었다. 다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가. 교만한 생각이고, 공감능력을 발휘하지 못한채 정죄하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입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걸 안다. 과연 그러나 내가 꺠달은 깨달음은, 나에게로 향한다. 나의 억울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전에도 지금에도 미래에도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한참 이르지 못한 자격미달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학하는게 아니다. 실제현상이 그렇다. 죄없는 인간이 죄의 대가를 치를 때에나 억울하다는 말이 성립하지, 나는 죄인이기에 죄의 대가를 받는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다시 바뀐 관점으로 나를 보면 나의 억울함과 나의 호소와 나의 정당함이 알량한 발악으로 보이게 된다.

용서와 긍휼의 미덕을 알고있다. 예수그리스도라는 희생제물로 인하여 내가 아무런 조건없이 사함을 받은 그 최초의 모형이 있다. 그것을 본받아 내가 누군가 나의 주변사람의 잘못함과 실수를 포용하고 용서하는 일은 즐겁다. 용서받는 사람이 즐겁고, 용서하는 사람이 즐겁다. 그것은 뭐랄까,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감동이 있다. 무너진 관계는 회복되고 서로에게 쌓였던 앙금이 눈녹듯 풀린다. 인간인지라 자꾸만 넘어지는 나를 보지만, 이제는 알고있다. 나의 모든 고통과 억울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감정의 혼동속에 속아넘어가는 것이라고. 은혜로 값없이 속량함을 받은 자는 묵묵히 그 길을 걷는다. 그리고 희생과 용서를 베풂으로 삶을 그리스도께 드리는 것이다. 그런 삶이 정말 가치있고 보람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역설적인 신앙의 세계, 진리이다. 나의 죄를 발견하고 돌이켜 회개할 때, 나의 죄를 부정하고 나의 정당함을 납득시키려할 때와는 다른 큰 충만한 행복이 나를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한한 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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