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마음을 버리고

내가 주님을 선택한 게 아니니까

by Daniel Josh


2020.06.19 말씀묵상
[롬11:18-21]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주님의 말씀에는 사랑과 화평의 말씀과 두려워 떨림을 주는 말씀이 공존한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인격과 신성을 지닌 존재들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 앞에 부끄러운 죄악을 들킬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죄인들이다. 때문에 언제나 주님 앞에 나아가려면 나 스스로의 죄인됨을 돌이켜 깨달아야 한다. 내게 있는 죄를 깨닫지 못하면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근원적인 통로자체가 막혀버린다.

오늘 주님은 나에게 두려움과 떨림을 주신다. 높은 마음을 가지지 말라,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지말라. 주님을 믿되, 내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선택하셨음을 기억하라. 겸손한 마음으로 긍휼을 구하고 죄를 회개하라. 역설적이게도 내 죄를 깨달을 때에 비로소 주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의 가치를 아주 조금 깨달을 수 있고, 그를 바탕으로 긍휼입은 자의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긍휼입은 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나 피해를 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원 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셨은 즉, 접붙인 가지는 더더욱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셨다. 그렇다.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 그들은 아직도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 복음화가 진전되어가고 있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간 끊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00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온 복음화의 기적에 참여하게된 오늘 날의 나는? 더더욱 아쉬울 것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의 복음이 이중성을 띤 것 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겸손해야한다. 하나님앞에서는 늘 마음을 낮추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연찮게도 나는 복음의 큰 사명을 감당했던 이들이 세상앞에서 아주 크게 넘어지는 것을 보아왔다. 그들을 보면 솔직히 첫 마음은 아주 강한 실망과 배신감이었다. 내가 오랜기간 몸담았던 선교조직의 우두머리격이었던 목사가, 가정도 있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 목사가 10년전에 미성년자 그것도 그곳에서 훈련받던 학생과 성스캔들이 났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정말 많이 욕했다. 살 가치도 없는 놈이라고. 무엇이 잘못 되었던 걸까? 그러나 그 사실이 여전했을 때에도 내가 몰랐을 땐 그 목사를 진심으로 존경하도 따랐었다. 하나님에게 아주 귀하게 쓰임받는 보배그릇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넘어지자 나는 마음이 높아졌던 것 같다.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가있을까. 저게 사람새끼인가. 이런생각을 했었다. 그저 그 스캔들의 진실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였다. 그 이의 죄악은 죄악이다. 그러나 그렇게 넘어지는 모습을 보며 혐오하는 것은 혐오할 죄악과 나를 거리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죄악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다. 나의 인격과 나의 행위와 나의 믿음은 하나도 구원받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조금만 스스로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알 수 있다는 것이 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나에게 부어져야만 내 죄가 깨달아지고 회개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은혜의 그늘 안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높은 마음을 버리고 오늘도 주님이 나를 붙잡아주시길 기도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겠다. 내게 복음이 능력이 되길, 그리고 그 복음이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흘러나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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