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두렵고 불편하다면

많은 믿지않는 좋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by Daniel Josh


2020.06.28 말씀묵상
[롬15:20-23]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은 놀랍다. 복음이 이미 전해진 곳은 피해서, 아예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곳을 골라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겠다고 하니까 말이다. 또한 자신이 있는 지방에는 더 이상 일이없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복음의 사명에 충실하게 사역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복음의 사명에 충실하다보면 주님이 복음을 전하도록 허락지 않는 단계도 오나보다. 물론 모든 사역에는 주님의 뜻하심과 계획,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하지만.

복음을 전하기로 마음을 먹고 또 일주일이 흘렀다. 결심이 실천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복음을 전하는 행위 이전에 복음의 대상자들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는데, 기도하지 않고 있다. 그저 하루하루 밀린 일들을 처리해내기 바쁘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잊지않기로 했는데. 오늘은 주일이다. 그럴수록 더욱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다. 교회도 안가고. 말씀묵상도 하지않는다면 나는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 맞을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돌아갈수 없는 떄의 기억을 되살려본다. 돌아갈 수 없어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감동이 있었고 인상적이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길에서 낯선사람들에게 복음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하며 스스로 감동했던 그때의 기억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걸까 싶다. 복음을 전해야하고, 복음을 살아내야 하는데, 나는 요즘 복음을 전하기가 몹시 두렵다. 특히나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내가 복음으로, 은혜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그들에게 은혜를 변증하고 권면하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 더군다나 복음에 관하여 안좋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더욱 움츠러든다. 종교 또한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존중받을 수 있는 가치일텐데, 그 조차 드러내기 꺼려지는 마음이 든다. 왜 그럴까?

솔직히 나도, 믿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강고히 하고싶다.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고싶다. 나의 죄를 함께 나누고 나의 연약함을 함께 나누고 토의하고싶다. 말씀에 비추어 삶을 공유하고싶다. 그래서 어제보다 더 믿음이 한단계 나아가는 은혜를 체험해보고 싶다. 나의 친한,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싶다. 믿음의 견고한 연대를 이루고싶다.
그래서 나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고, 사명을 늘 기억해내며, 그렇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믿지않는 많은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있는 삶을 살고있다. 그들이 안타깝고 그들이 주님을 믿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할 것 인가’ 라는 생각이 스민다. 이들은 복음이 없어도 나보다 착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데, 무슨 근거로 복음을 전할 것인가? 하는 생각말이다. 사실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근거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 있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복음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않다. 내 여자친구가 믿지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존경하고 의자하는 형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나 많은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복음을 모르고 산다는 것이. 신앙을 가지는 것이 나약함의 표상이 되고, 비물질적인 가치를 지나치게 신봉하는 위험한 신념체계가 된다는 것이. 적극적으로 변증하려 애쓰지않으면 나 스스로도 계속 확신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두렵고 힘들다.

그렇지만 반대로 이런환경이기에 내가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많은 불신결혼을하고 아픔을 겪고 주님을 찾게되고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사는 그런 간증들을 본다. 나의 죄는 여전하지만 주님은 그런 나를 찾아오셔서 돌이키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을 하시는 그런 간증들을 듣는다. 나 또한 그렇다. 연약하고 믿음이 부족하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것이 절망해야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반대로 내가 그 사명의 주인공임을 받아들이는 기점이 된다.

보이지않는 많은 곳에서 복음은 전해지고 있다. 입에서 전해지고, 헌신으로 전해지고, 기도로 후원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거대한 주님의 사역에 나 또한 동참하려 한다. 다시 한번, 일어서서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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