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휼하는 심장을 가지기 가장 좋은 방법
2020.07.07 말씀묵상
[왕하4:1-2]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살다보면 서러울 때가 있다. “주님, 내가 주님을 경외하는데 나에게 어떻게 이런 시련이 있습니까?” 나아가서는 불평불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왜 평온하게 잘 사는 내 인생에 이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날 좀 내버려두세요 제발.”
그러나 원망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그것을 이야기하고있다. 내가 괴로울 때 하나님은 나의 원망의 대상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구원요청의 대상이 되셔야한다. 둘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멀고도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인격적 관계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부모님과 나 사이의 관계를 예를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뭔가 어려움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부모님은 나를 도와줄 여력과 관심이 충분하다. 그런데 감정의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며 원망하면 부모님은 마음이 아플 것이고 많은 경우 다투게 될 것이다. 인격적 관계는 다른 무엇보다도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태도는 그저 말을 예쁘게하고 공손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어떤 무게로 두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그러니까 나한테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아무렇게나 떙깡피워도 되는 만만한 대상이면 감정을 빼고 어려운 부분에 대하여 소통하면 될 것을 굳이 짜증을 내 감정받이가 되게끔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 관계도 마찬가지다. 걸핏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사람이 있다. 혹은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가운데 그런 동요가 일 때가 있다. 아 왜 하나님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시지 못하는 거지? 왜 나의 삶을 방해하시는 거지? 하면서. 우리는 다만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아니라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삶, 하나님의 개입을 갈망하는 삶이 복된 것이다. 본문 말씀의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힘써 일하던 종의 아내로, 그 자신도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다. 그것을 기억해달라고 엘리사에게 ‘요청’한다. 그러자 엘리사, 즉 하나님의 선지자의 대답은 꾸짖음이 아니었다.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하랴. 그럼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그분에게 손을 벌려, 입을 벌려 요청하는 이들을 외면하시지 않으니까.
요즘 갑자기 잠을 자다 일어났는데 목과 왼쪽어깨에 담이결렸는지 너무너무 아픈 일이 있었다. 지금도 욱신거리는데.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이런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했다. 아니 솔직히 원망스러웠다.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신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플 이유가 전혀 없는데 아픈거니까. 오늘 본문 간증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주님이 주님의 사람들을 다루시는 방법을 본다. 멀쩡하던 사람이 병을 얻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인간관계에서 불편을 겪는 등. 그러면 보통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그 상황자체를 부정하려고 애쓰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 죄를 보게된다. 내가 지금 무엇을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었는지. 내 주위에 내가 돌봐야할 영혼들은 없는지.
누나를 사랑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 나에겐 결국 평생의 숙제와도 같을 일이 될 것이다. 누나는 몸이 아프다. 자기 방 바깥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인간관계는 예진즉에 망가졌고, 우울증과 망상증, 그리고 여러 통증을 호소하고있다. 나는 그런 누나가 싫었다. 그 소름끼치게 허약한 모습이 싫었다. 그리고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내 몸이 조금만 아프니까, 그 불편과 거기서 오는 장애감,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는 불편이 상상을 초월한 최근의 경험을 하고나서. 다시 누나를 떠올리게 된다. 주님이 지금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지 귀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요청하게 된다. 나를 용서해주시고 내가 주님의 바른길을 걸어가도록 나를 낫게해달라고. 이렇게라도 겪으면서 조금씩 남을 체휼하는 법을 알아가는게 아닐까. 나는 이토록 완악한 사람이다. 나의 교만이 하늘까지 솟구치지 않기를, 내가 주위의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약함을 공유할 수있는 예수님과 같은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