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결핍과 필요에 함몰되지 말 것

by Daniel Josh


2020.07.08 말씀묵상
[왕하4:13]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에게 헌신적으로 필요를 채워주고 도움을 줬던 수넴여인에게 엘리사가 묻는다. 너가 무엇을 원하느냐. 금도끼냐, 은도끼냐. 말만 해라. 이 질문 앞에 여인은 대답한다. 저는 주의 백성중에 거하고 있으며 더 바랄게 없이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가식이 없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하물며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필요가 있는 법인데. 그래서 그런 필요를 주님이 붙여주신 귀한 수넴여인으로 채워지게 된 것일텐데.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린 저마다 물질이든 인간관계든 본인의 능력이든 결핍들을 갖고있다. 그래서 내가 주님앞에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나는 고백하고 싶을 것 같다. 우리 주님이 내가 그것을 원한다고 섭섭해하실 분도 아니시고. 나는 많은 결핍가운데 살고있다. 이것도 가지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싶다. 나는 부족하다.

하지만 이것은 어찌보면 믿음의 시험이다. 주님은 나를 시험하지 않으셔도 나의 마음은 늘 시험에 처한다. 나는 수넴여인의 고백을 드릴 수 있을까. 내가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을 순수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대접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바라지않고 그저 드릴 수 있을까? 가족에게도 그런 사랑을 주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나는 주님을 섬기는 마음에 불순물이 섞여들어간건 아닐까.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나의 필요를 구할 수 있는 계책을 마련하기 위해. 신앙을 도구삼는 것은 아닐까.

본문 이후에, 수넴여인이 이렇게 고백하는데도 엘리사는 기어코 어떻게 여인에게 축복을 베풀수있을지 고민하여 답을 찾아낸다. 하나님의 사람을통해, 하나님은 수넴여인을 기억하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표현하신다. 말하지 않아도 그 필요를 다 알고계시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고있는데 완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하면 실천하기가 힘들다. 내가 주님을 위해 사는 것, 혹은 그것을 표방하며 끊임없이 은혜를 구하는 것. 그런 와중에 나의 부족함과 결핍에 대한 고민들, 생각들을 주님은 다 알고 계신다. 지금 이순간에도 나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 그것을 진정 믿는가.
그렇다면 순수해질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결핍에 집중하는 시선이 나를 순수하지 못하게 만든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집과 차와 애인이, 능력이, 인간관계가, 건강이 없어도 나는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수있을까. 정말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신앙은 장난이 아니다.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그외의 사소한 나의 일상의 삶들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나의 필요들이 나의 생각을 채워 하나님의 자리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면. 이런 고민들에 나의 믿음을 저울질하게 된다면. 나는 절대 수넴여인과 같이 고백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만을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누구든지 서있는 체하면 넘어진다고 하였다. 애초에 나는 주님을 순수하게 바라고 말씀 앞에 순종할 능력이 없다. 매일 매일의 우리가 사는 삶의 순간들은 주님이 통치하시는 천국에 대한 개념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말씀을 통해서 자꾸만 삶의 주권을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드려야 한다. 나의 가치관을, 나의 방향을 수정해야한다. 그래서 나에게 유일한 필요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영적필요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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