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을 매길수 없는 값없는 은혜

복음을 전하는 방법

by Daniel Josh


2020.07.12 말씀묵상
[왕하5:16-17]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나병이 고쳐지도록 방법을 가르쳐주었고, 그는 의심하지만 결국 순종함으로 그 병이 낫는 은혜를 체험한다. 주일학교시절에 수도없이 듣던 그 나아만 장군의 나병이야기다. 그리고나서 지금 말씀 본문은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에게 보답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거절한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라고 한다. 예전에는 단순히 탐욕을 버리는 청렴한 그리스도인의 교훈삼아야할 모습정도로만 이 구절을 생각하며 지나쳤던 것 같다.

엘리사는 왜 나아만장군의 성의표시를 거절했을까? 나아만장군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비용을 지불하고 받는 의료서비스가 아니다. 이것은 치료불가능한 병이 고침받는 ‘기적’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역이다. 병이 치유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모르는 나아만이 세상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알게되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값을 지불받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훼방놓이게 된다.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 베풀어지는 기적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이자 구원으로의 초대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경험한 나아만장군의 반응은, 오직 한분만 존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겠다 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값없이 베풀어져야 한다. 결코 그것이 금전적으로 가치가 없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격의 일이기 때문에 값없이 베풀어져야 하는 것이다. 세상은 매우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있다. 아니 그렇게 믿도록 만든다. 사람은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선택또한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지불한 값 만큼 누리려고 한다. 자기가 금전적 소비를 하고 이용하는 서비스,재화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믿고 산다. 그러나 그 믿음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허구위에 세워져있다. (여기서 허구란, 유발하라리가 말했던 것처럼 돈, 국가와 같은 종류의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땅의 기준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어주신 그 사랑은, 결코 환산할 수 없는 가치와 무게를 지녔다. 동시에 그것을 나는 선택받은 자녀라는 이유로 거저 받았다. 누군가의 눈물과 피와 땀 위에서. 그러니 이는 모든 다른 영혼들에게 거저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전해진 복음은 이루다 말할수 없는 세상의 진실을 깨달은 자의 탄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는 외친다. 주님이 오직 한분이시며 나를 향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구나. 나를 구원하셨구나.

복음은 어떻게 전해야할까? 그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세상의 언어를 익혀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복음은 세상의 언어로 이해될 수 없는 언어다.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능력이다. 복음은 거래가 아니다. 복음은 긍휼이다. 나의 삶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 나는 어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헌신을 값없이 나누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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