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죽어버린 곳에서
2020.07.13 말씀묵상
[왕하6:1-2]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엘리사의 스승 엘리야의 기도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왕의 살해위협에 쫓길 때에 로뎀나무밑에서 기도한다. 하나님 이제 선지자는 저 하나 남았습니다. 어서 내 목숨을 거두어 가소서.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응답하셨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는 7000명을 준비해두었다고. 그 기도를 드릴 때 그 7000명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엘리사에게는 그를 따르는 제자 선지자들이 있다. 그들의 수가 많아져서 거처를 새로 구해야할 시점이 되었다.
하나님은 과연 지금도 쉬지않고 일하시는가?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오늘 나는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내가 알기론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자라 교회에 드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족 모두 기독교에 회의를 느끼고 돌아섰다고 한다. 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공동체가,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자가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 그것이 깊은 회의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고한다. 그리고 나도 문득 그 입장을 헤아려본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가? 그리고 지금도 일하고 계신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무자비한 일들이 일어나고 마는 것일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 이 세상이라면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서 무얼하고 계시는 걸까. 원망하는 마음이 든다. 김영하의 소설 [검은꽃]을 읽다가 ‘하나님은 과연 실’존하시는가’ 하는 물음이 내 마음속에서 폭발했다. 내가 본 것은 착취, 끝도 없는 착취였다. 남을 속이고 빼앗고 착취하고. 이기심을 채우는 화폐에 사람의 인격이 파괴되고, 자괴감을 느낀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현실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현하기는 커녕 나 하나도 속지않고 나를 지켜내기 힘든, 그런 정글에 살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게 힘이 있다면,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렇게 비참한 현실들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텐데.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내 스스로의 더럽고 비참한 죄를 깨닫는다. 그래서,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이동현목사는 왜 권력을 이용해 뭣도 모르는 미성년자의 성을 착취했을까? 박원순은 왜 지위를 이용해 비서의 성을 착취했을까? 도대체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가? 하나님의 언약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 하고싶은 물음이 떠오른다. 하나님, 상처받고 실망하고 좌절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이들의 낙심을 어떻게 메꿀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가늠이 안됩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쉬지않고 일하시며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000명의 용사들을 예비하고 계신가요?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의 믿음이 아니고서는 희망을 보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코로나19로 물리적 성전인 교회가 무너졌다. 나는 지금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서 신앙생활을 한지 어언 6개월이 다되간다. 그러면서 보이는 것은 상처받은 사람, 삶에 지친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교회는 못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복음의 사각지대에 놓인 나같은 사람들을 보았다. 이 시대 교회공동체의 정의는 새롭게 개편되어야 한다. 성전건축은 화려하게 완공되었지만 그 장소에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
정작 말씀이 필요하고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소외되는 장소 [교회]를 보고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을 지닌 사람은 체제가 아니라 영혼을 봐야하지 않을까? 체제유지는 언제나 많은 생명들을 착취하고 파멸하게 만드는 결과를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이기심을 배불리한 역사를 가져왔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는가? 희망이 정말로 있는가? 그렇게 믿고싶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이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통해 영혼의 변화까지 일구어내는 것을 보고싶다. 그리고 그 귀중한 자리에 내가 쓰임받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