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달라짐이 없지만

불말과 불병거를 본다면

by Daniel Josh


2020.07.14 말씀묵상
[왕하6:15-17]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사실 영적인 눈이 있다고해서 주어진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내가 달라진다.

믿음은 행동을 수반하게 되어있다. 어떤 사람이 과감한 행동을 보이면, 우리는 그자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어떤 믿는바가 굳게 있다라고 여긴다. 당장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람은 살아서만 지각할 수 있고 세계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모든게 끝이니까. 엘리사의 사환이 아람의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싼 것을 보고 큰 두려움을 느껴 엘리사에게 고백한다. 그러나 엘리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영적 눈이 뜨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눈동자같이 그들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믿음이, 그리고 자신에게 그것을 타개할수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능력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능력이지만)눈을 떠서 보면 나를 둘러싼 절망적인 상항 그 바깥으로 또 한번 둘러싼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보인다.

나에게 이런 믿음이 있고, 믿음의 눈이 있다면 나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사방이다 끝장나버려 외롭고 도움의 손길조차없는 절망적인 상황, 희망이 죽어버린 상황에서 조차 하나님은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내 마음의 상태와 그에 따른 반응 역시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도 키포인트는 내 스스로를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믿음의 눈이 가리워진 이들에게 당혹스러움이 찾아오면, 제일먼저 저지르게 되는 실수가 자기자신을 의지하는 것이다. 나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의 능력을 과신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달리 방도가 없으니까?

오늘 본문의 간증에서는 바람피운 남편이 60개월동안 월 450만원의 빚을 상환해야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상황에 처한 아내의 이야기가 나온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까지 막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수 있단 말인가? 바람피운 남편이 뭐가 예뻐서 그와 인격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그래서 회생하게 되는 말도안되는 사연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것이 복음의 능력이 아닐까. 믿음이 없으니까 비꼬게 된다. 상식선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상황들을 극복하게 만드는 주님의 능력인 것이다.

나는 지금 주님을 믿는 믿음의 눈이 뜨여있는가? 그래서 나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고 있는가? 나를 둘러싼 상황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인가? 사실 간증본문을 읽고나서는 내 상황이 그렇게 심각하지도 않다고 느끼게 된다. 세상에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생명을 얻는다. 부디 나의 신앙이 그저 주님이라는 비빌언덕으로 불안한 마음을 낫게하는 명상수단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주님이 나의 가장 큰 상급되시길 기도한다. 사실 나는 아주 실용적인 이유에서 주님을 찾고 있다. 나에게는 주님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주님이 날마다 나를 말씀으로 가르치셔서 나의 삶이 더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곳으로 인도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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