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 자폐세계 아이

3_역할놀이_

by Daniel Josh


두꺼운 껍질 속에서 나는 역할 놀이를 했다.
늘상 전개는 비슷비슷했다. 봤던 tv만화영화의 재구성, 감독과 배우 시나리오 모두 내 몫이었다.

더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좋아하는 만화에서 즐겨 사용하는 이야기 전개 방법.

영웅과 악당의 반복되는 결투. 흔한 클리셰.
봤던 것들을 내 손으로 다시 반복하길 즐겨했다.

권태란, 반복되는 것에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을 느껴야 구역질을 동반하며 깨닫는 것이다.
권태를 깨닫고 나면 지루함으로 가득한 무간지옥의 굴레를 벗어나려 발버둥 칠 테다.
나는 그 안에서 필요한 재료들 만을 가지고 끝없이 재조합했다. 권태를 느낄 정도는 안되었다.

우린 모두 사랑과 인정을 먹고살지 않는가?
자폐세계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다만 방식이 다를 뿐이다.
관심받고 싶은 마음의 절정은, 내가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을 넘어선다.
나라는 주체는 사라지고 의지만 남는다. 관심이 자기 자신이 아닌 사물을 비추는 지경에 이른다.
그 지점에서 자아효능감은 극대화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아무리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더라도 충분치 않다.
심지어 내가 그 무리 중에서 빼어난 대장 노릇을 배정받았다 치자.
그것도 결국엔 어디까지나 작은 사회의 모습을 띤다. 사회는 역할을 나누어 갖는다.
철없는 아이들이라지만, 서로 입장을 교환하며 조율하게 마련이다.
자폐아이는 그것조차 불만일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길 원하기 때문에, 혼자가 된다.
그런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은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혼자 남은 아이는 곧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사회 부적응자가 된다.

그런 아이에게 친구라는 개념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는 위협적인 세상을 마주 하기가 두려웠다.
때문에 아이는 모든 변수가 통제안에 들어오는 환경 에서야 마음이 즐거운 놀이를 할 수 있었다.

그 놀이란 주로 장난감을 통한 역할 놀이였다.
즐거운 놀이라는 게 결국 무엇인가. 내 마음이 즐거워야 하는 게 중요하다.
상처 입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극도로 이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또래 친구들을 밀어냈다.
오로지 나의 목소리와 나의 생각만이 가득 채우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자아효능감이 만족스럽게 발현되려면 오롯이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반드시 그 정체성이 창조주로서 여야만 했다.
나는 모든 변수들을 조종하는 존재가 되었다.

창조주가 된 아이가 만족감에 이를 때까지,

남자와 여자, 악인과 영웅, 약자, 엑스트라 등등 역할을 배분받은 피사체들은 무임금 노동착취를 당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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