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는 혼돈을 정리하고
2020.07.21 말씀묵상
[왕하9:1-3]
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2 거기에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의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그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
3 기름병을 가지고 그의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하지 말지니라 하니
아합의 집안이 죄를 많이 지었고, 하나님은 이를 심판하시기위한 준비를 하신다. 예후라는 자를 새로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선지자의 명령에 따라 그의 제자가 그를 찾아가 기름을 붓는다. 그런데 자세히 이 장면을 보면 아주 현실적이다. 엘리사는 그의 제자에게 명령하기를, 지체말고 도망가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는 곧 왕에게 반역죄로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한 많은 신들의 모습과 하나님은 정말 많이 다른 것 같다. 인간이 생각하는 신은, 그 즉시 무언가를 개입해 이루는 먼치킨적인 존재에 가깝다.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상식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된다. 초능력을 가진다거나, 억울했던 모든일이 기적적으로 풀어지고 해소되는 그런 것.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으로 일하시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다. 공의와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생각해보자. 아람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엘리사는 그들의 눈이 멀도록 만들어 사마리아 한가운데 까지 오도록 만들었다. 엘리야의 갑절의 능력이 있는 엘리사다.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 아합의 집이 여지껏 망하지 않고 건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 지금 본문에 나온 것처럼, 그의 제자가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도망치는 일이 생기는 것으로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일하시는가? 주님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고 많이 들은 바 있다. 왜 그럴까? 그게 하나님의 방식이다.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가 아주 명확하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국가, 공동체, 가정, 직장의 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보통 그 질서를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에 순종하는 것이다.
아합이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할수도 있는 것을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예언하시고 성취하신다. 사람을 준비하시고,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며, 동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만드신다. 그리고 말씀에서 나오는 그 동일한 원리가 지금 현재 이시간을 살고있는 나에게도 적용된다. 하나님은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 나 또한 내가 속한 질서속에서 하나님의 동행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길러진다.
며칠째 갈피를 못잡고 중독과 자극들로 도피했다. 육체적 즐거움을 찾았고, 다른생각들로 현실을 외면하기를 반복했다. 감정소모가 있기도 했으나, 내가 해야하는 많은 일들에 기가질려 전의를 상실하고 있기도 했다. 무기력했다. 다시 첫 단추부터 제대로 채워나가야 한다는 익숙한 진리를 외면하고 있었다. 질서가 붕괴되면 질서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어렵다. 쏟아지는 혼돈속에서는 죄성이 끊임없이 피어올라오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뜻과 나의 갈피못잡는 죄성을 헷갈려서는 안된다. 먼저 나의 마음과 몸을 정비해야한다. 하나님이 쓰실수 있는 깨끗한 그릇이 되는 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