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개입하지 않으시는 사건이 없다

우겨쌈을 당하여도 바라보아야 할 것은

by Daniel Josh


2020.08.20 말씀묵상
[왕하21:20-24]
20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21 그의 아버지가 행한 모든 길로 행하여 그의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을 섬겨 그것들에게 경배하고
22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 길로 행하지 아니하더니
23 그의 신복들이 그에게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24 그 국민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게 하여 왕을 삼았더라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하지 않으시는 사건은 없다. 이 말이 오늘 묵상한 말씀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다. 하나님은 나를 어지간히도 사랑하시나 보다. 내 삶이 괴롭다보니, 이것저것 나를 곤비케하는 일들이 많다보니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말하게 되어버린 것 같은데, 지친몸이 나를 기울이는 감정상태에서는 그러하나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사람은 동물처럼 현재만 사는 것은 아니니까. 이런 주님의 개입하심이 나를 거룩한 삶으로 고쳐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나는 주님이 필요하고, 그것이 지금 나에게 좋지못한 고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어제 있던 모임에서 누군가 물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정말 진정한 사랑이란 말그대로 아무것도 바라지않고 주기만을 원하는 사랑이 아닌가? 기독교신앙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했다. 사랑에는 무조건적으로 그 대상이 잘되기를 바라는 그런 감정, 숭고한 감정이 한 속성으로 품어져있기는 하지만,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사람의 생각은 그저 관념일 뿐이다. 실제로 사랑은 다분히 조건적이다. 조건적인 모습을 하고있다. 하나님은 그저 인간이 자기맘대로 살기를 바라며 이땅과 하늘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존재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한 철학자는 본질이전에 존재가 먼저였고 우린 그저 던져진 존재이며 의미는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라 했지만, 구속사적 관점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분명한 목적성을 띠고 우리는 세상에 존재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사랑을 주고 받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경험했다시피, 관계는 다분히 주체와 객체가 서로 약속된 질서와 조건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그러니까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건 인간이 멋대로 지어낸 관념이지, 실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나를 돌보신다. 나로 하여금 나아가게 하는 방향이 분명히 있으시다. 나는 그런 경험을 하면서 자랐다. 분명히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같고 무기력하고 지칠 때도 많지만, 경험을 통해서 알고있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나를 우겨싸고 죽이려고 해도 본질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의지해야 모든 일들이 주안에서 풀리는 것을 볼수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애꿎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아몬은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죄의 결과를 그대로 따른다. 그래서 그를 따르던 신복에게 궁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를 죽인 신복들 또한 국민들의 손에 죽는다.피가 낭자한 이 난잡한 사건들 속에서 우린 하나님을 보아야한다. 피 한방울 튀기지 않아도 충분히 멘탈붕괴를 경험하는 나날들 속에 살고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피를 쏟게 되는 이 역사 앞에서 나는 겸허하게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말씀으로 양육되어야 한다.

내가 회개하지 않으면, 죄악의 결실과 씨앗이 므낫세로부터 아몬에게로 옮겨가듯, 나의 오늘이 내일로 그리고 내년으로 그리고 다음세대로 옮겨간다. 나로 하여금 영혼이 죽게 되는 것이다. 나는 회개의 결실을, 나로부터 변혁이 시작되기를 기도한다. 내가 주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오늘을 경험하고 그리고 내일도, 그 내일도, 하루하루를 변혁시키길 원한다. 또한 나로 하여금 영혼이 살아나는 은혜를 누리기 원한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여주시길. 나의 회개가 주님께 전달되길, 주님이 오늘 나를 구원하시는 역사가 씨앗이 되어 구원의 은혜가 흘러나가길 기도한다.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린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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