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고 지나가게 하시는 은혜
2020.08.25 말씀묵상
[왕하23:25-27]
25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
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요시야와 같이 마음과 뜻과 모든 것을 다하여 주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가 있음에도, 므낫세가 지은 참혹한 죄의 씨앗은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유다를 멸망시키려는 그 뜻을 돌이키시지 않는다. 그렇다. 죄는 사람의 힘으로 근본적으로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회개하면 모든 것이 돌이켜지는가? 그것도 아니다. 죄를 회개할 수 있는 능력도, 심판을 돌이킬 수 있는 긍휼도 주님앞에만 있다. 나는 인격적 관계를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 그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다. 말씀을 보면서 지속적으로 날마다 돌이켜야 하는 한 가지는, 내 존재의 규명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으로 형통해지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무엇에 비유하면 좋을까. 나와 친한 나의 친구의 재산이 내것은 아니지만, 나는 친하다는 이유로 그 친구에게서 많은 좋은 것들을 나누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재산이 많은건 내가 아니라 그 친구라는 것.
인간이 자꾸만 실수하는 것은, 자신 스스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것, 교만에 빠지는 것이다. 내가 지금처럼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나중에 하나님앞에 내가 죽기전에 회개하면 내 죄의 문제는 해결받고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큰 오류인 것도 같은 이치다. 하나님이라는 분, 예수님이라는 분 종교를 무슨 보험들듯이, 그렇게 하나 걸어놓고 내가 맘대로 살다가 결정적인 일이 찾아오거나 내가 힘들어질 때에 나는 주님을 믿는다고 매달리면 주님이 나를 찾아주실 것이라고 그렇게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않다. 많은 믿음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이 비참하게 고꾸라지는 것들을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들보다도 못하다. 그들 처럼 강단있고 신실하고 지식이 많거나 믿음으로 행동해 하나님을 진실로 대면하거나 홍해 앞에 서거나 그런 일들을 하는 비범함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물론 그들의 위대함은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교만과 그들의 추락을 보면서 배워야 하는 건, 나 역시 그들과 같이 하나님을 언제든지 배반하고 저주할 수 있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날마다 깨달아야 한다는 데 있다.
말씀을 깨닫는 지혜가 허락되지 않으면 나는 주님을 만날 수 없다. 회개할 수 있는 무릎이 허락되지 않으면 나는 내 죄를 주님앞에 고백할 수 없다. 죄를 고백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진실로 돌이켜지는 수고가 없다면 주님께서 받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이렇게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다면 나는 주님을 필요로해도 주님을 찾지 못할 것이다. 모든 불가능의 가능성 속에서도 오늘 또한 기적처럼 주님을 찾았음에 감사하다. 감사, 감사가 나의 삶의 제목이 되기를 소망한다. 어떤 욕망도, 나를 교만하게 할 수 있는 나의 가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주님앞에 신실하게 꾸준하게 나아가 나의 죄를 고백하고 나의 삶을 돌이키는 나날이 나에게 허락되기를 기도한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