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앞에 늘 감사하는 삶을 살고싶다
2020.08.26 말씀묵상
[왕하23:35]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그가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였더라
요시야가 죽고 그의 자식이 정권을 물려받는데, 요시야의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던 모습을 다 봐왔음에도 자식세대는 그것을 배우지 못한다. 도리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짓만 골라한다. 주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은 학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있는 대목이다. 주님이 허락하신 그릇에서, 주님이 주신 은혜속에서야만이 죄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사무엘도 영적후사를 낳는데 실패했지 않은가. 요시야와 사무엘과 같은 뛰어난 영적 거인들도 개인으로 주님앞에 서는 것이지, 그의 자식대에 들어서는 그것을 주님앞에서 일개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지니지 못한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나로 하여금 나의 친구를, 나의 자식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식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그들도 하나의 개체로서 주님과 일대일의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느낀다. 요시야가 아무리 주님앞에 충성을 다하여도 요시야로 인하여 그의 자식대 영혼들도 주님앞에 충성을 다하게 되는 것은 알 수 없다.그러나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그 또한 가능해지는 것이다.
본문처럼 요시야의 아들들은 정권을 잡고 주님을 따르지 않았고, 그 결과는 세상앞에 굴복한 비참한 유다의 모습이었다. 바로에게 금은을 바치고, 끊임없이 간섭받고,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이 세상의 약한 족속들보다도 더 약하고 처참한 모습을 보인다. 왜 그러할까? 하나님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람은 이전의 연약함보다 더욱 가난한 삶을 산다. 나 또한 그렇다. 하나님을 섬기다가 지쳐서 하나님을 벗어나보려고 했지만, 내 뜻대로 계획을 세워 잘 이루어가보려 했지만 그건 잘못된 방법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관계속에서 모든 것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한, 내가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면 죄를 의지하게 되는 이분법적 세상에서 살고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개념상 이원론이 아니라 일원론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으로 나뉘는 것이니까.
오늘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아빠와 혈기를 내며 다투었다. 아빠가 먼저 화를 내긴 했지만, 내가 아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피곤하고 스트레스도 잔뜩받고있는 상황이었는데, 짜증섞인 목소리와 비난하는 조의 말투를 들으니 나도 그만 빡이돌았다.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자존심 상 사과하기도 싫고 아무튼 그렇다. 나의 잘못은 잘 알고있다. 감사하지 못하고 더 근신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내 주위 모든 사람들 앞에 겸손하게 처신하지 못한 것. 하나님이 아침부터 나를 겸손케 하시려고 허락하신 일 같기도 하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면, 이런 작은 사건 하나로 인해 하루의 기분이 잡쳐질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을 알게되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일 인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불평에는 끝이 없고 만족의 추구에는 끝이 없고 좌절에도 끝이 없으며 이로인해 삶이 파괴되는 것도 나락을 향해 곤두박질 쳐도 끝이 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악의 순환을 끊어내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형통하는 삶을 돌아가는 것.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내 삶이 긍휼을 입고나면 나 또한 누군가를 용서하고 긍휼할 수 있는 것. 누군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신앙의 비밀이고 신앙의 비결이다.
하나님이 오늘도 이 부족하고 죄많은 나를 긍휼로 보살펴 주시고 말씀으로 깨닫게하셔서 바른길로 들어서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