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세속은 그만 내려놓아야할 때
[역사를 움직이는 존재 앞에서]
-이제 세속은 그만 내려놓아야 할 때
2020.08.27 말씀묵상
[왕하24:7]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점령하였음이더라
여호야김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고 돌아선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능수능란한 외교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포섭해둔 애굽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애굽은 문화적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강성한 나라였고, 그 나라를 배후에 두었다는 것은 이유있는 자신감을 가질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야김의 통치력과 외교력, 책임감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는 능력있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본문처럼, 역사 그자체가 변하는 경우에서 그런 전략,전술은 무의미하다. 역사의 패권이 애굽에서 바벨론으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운영하시는 분이다. 그런 분을 상대로 인간이 쓸수있는 술수란 없다.
우리는 늘 세상을 바라본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욕망을 한다. 욕망은 다시 전이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리다툼을 한다. 그렇게 우리가 바라보는 세속의 권세는 우상이 된다. 나 역시 그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돈을 많이 벌고싶고, 그 돈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원하는 삶이란 곧 또한 많은 이들이 갈망하는 지점에 있다. 내가 사람들이 원하고 질투하는 목표를 이루어야 또한 그것이 구성원들의 인정안에 포획되어 내 만족감을 극대화시키고 유의미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우리는 돈과 명예와 인정을 끊임없이 갈망하다가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주님 앞에 서지 않으면, 계속해서 순환하는 욕망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사는 목적은 무엇인가 생각을 해보았다. 솔직히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 같지 않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분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하여 살아가는 것 같지 않다. 그랬다면 내 삶은 진즉에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서 살아간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삶에 대한 유인과 동기는, 성장과 변화의 기쁨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적부터 게임을 정말 좋아했다.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를 분석해보면, 아주 단순하면서도 인간의 욕구심리의 본질을 꿰뚫어볼수 있다. 그건 성장과 변화의 욕구를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될 과제 1개를 해소하면 나의 수준이 그에 해당하는 만큼 이전보다 향상된다. 과제 5개를 해소하면 더 많이 향상된다. 따라서 더많은 과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패턴이 만들어진다. 더 성장하기 위해.
사람은 지루한 것을 못견뎌한다. 또한 너무나 가변적인 상황도 적응하지 못한다. 계단을 올라가는 행위처럼 차곡차곡 향상되는 패턴이 인간심리에는 아주 잘 맞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삶이 재미있다. 사실 이전에 사역했던 것도, 영혼구원의 역사를 바라본 것도 있지만. 다른 동기들도 많았다. 인정받기 위함, 내 스스로 성장하기 위함, 내 사람을 얻기 위함, 등등. 나는 순수하지않은걸까? 사실 매일매일의 삶에 감사하면서, 주님의 길을 가는데 충실히 말씀과 기도로 가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것이 자칫 내 욕심으로 번져서 하나님이 아닌 세속을 의지하게 되지 않기를 기도해야할 것이다. 주님 한분만으로 나는 만족해 라는 찬양의 가삿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주님이 아니고서는 나는 살수 없을지경이 되도록 삶이 고단하고 힘든 상황 가운데 놓여있다 라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불가운데도 물가운데에도 지나가게 하실 것이다. 그럴수록 알게 될 것이다. 내안에 축적되는 것은 오직 주님에 대한 신뢰 뿐, 나의 능력이나 나의 물질, 나의 조건들이 아니라는 것을.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머리가 아파온다. 오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오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먼저 살아보려 한다. 주님 나를 오늘도 인도해주시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살펴주세요.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