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계 모형 안의 신앙

나는 늘 주님을 ‘생존하려고’ 찾았다

by Daniel Josh


2020.09.17 말씀묵상
[겔10: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여호와의 영광이 나에게서 떠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여자와 술과 도박에 빠져 삶이 망가진 사람의 간증을 읽고서 든 생각은, 내 삶 역시 이와 결코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이다. 끝없이 공허를 해소하려 욕망을 욕망하는 육체를 가눌길이 없어서 원치않는 삶으로 영혼이 죽어가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저릿했다.

감히 그런 고백을 했던 것 같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셔도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아니, 하나님이 나의 삶을 방해하시지 않도록 내 삶을, 나만의 영역을 구축해 살아가야 겠다. 이런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던 것 같다. 만족을 모르는 정욕이 나를 이끌어가는대로 끌려다녔다.

청소년기 내가 처음으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했던 기도의 제목들이 생각난다. 매일매일 음란과 만족을 모르는 소모로 쓰레기같이 허비되는 나의 나날들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지길, 다시 거듭나길 소망한다고.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질 않지만 그렇게 기도했던 것이 떠오른다. 내 영혼은 진정 하나님안에서 자유함을 얻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은 나의 기도를 돕고 계셨던 것이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라는 책을 보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자신의 삶을 보호하려 자신만의 세계로 끊임없이 침잠해들어가는 자폐인들의 삶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얼마전엔 이야기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뇌속에서 세계에 대한 인식모형을 만들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읽었다. 그러자 신앙체계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인간의 두뇌는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현실을 대뇌의 전자기극에서 일어나는 신호의 패턴안에 가둔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가 창조된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으며, 판단 또한 불가하다. 과연 그런 각각 수억의 세계안에 살아가는 개인들은 어떻게 신의 존재를 상정해내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신념체계가 삶을 지속하게 만든다는 것은 소름끼치게도 사실이다. 나는 내가 믿고있는 것이 실재하는 하나님인지, 내가 믿고싶은 존재인지 헷갈리게 되었다. 어찌됐건 나는 믿음을 유전자처럼 태어날때부터 물려받았으므로. 이런 신념체계는 견고하게 정립되어있다.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 종류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혼란을 맞이하거나, 하나님이 나에게 멀게 느껴지고 삶이 망가질 때면, 나는 다시 하나님을 ‘생존하려고’ 찾았다. 내가 알고있는 한,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해석과 방안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픈 욕구를 해소하는 인간의 생리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더라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인간은 자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인물들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니까. 신앙에 있어서 나의 삶은, 거룩을 위한 여정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나는 무지와 더러움의 죄악에서 벗어나 밝히 볼수있는 지혜와 거룩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처한 문제는 단순히 게으름이나 나태, 중독에 따른 삶의 패턴 붕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떠난 성전이 음란으로 채워진 것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잘 모르겠지만, 오해와 불신으로 점철되었던 신앙도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다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아간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지금 나에게는 선택의 옵션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않다. 나는 달려나가야 하며, 지금의 무기력과 공허와 중독의 늪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어떤 작은 지푸라기도 잡을 각오가 되어있다.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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