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의인의 의를 합쳐도 죄의 무거움은
2020.09.25 말씀묵상
[겔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인간의 개인적인 의는 나라와 민족은 커녕 자기 옆의 타인조차 지킬 수 없다. 말씀을 읽기 전, 세상을 살아가는데 중요하다고 교육받아 생각하게 된 의로움은, 그 가치가 천하보다도 귀중한 것이라 여겨졌지만. 실상 한 사람의 의라는 것은 다른 한 사람의 죄보다도 여실히 가볍다.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이 어느 다른 의보다도 더 엄중한 죄일 것이며, 예수를 모르는 의인들에게 예수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노아, 다니엘, 욥 세 명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들은 성경말씀에서 우리가 보았듯 환란이 닥쳐올 때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구원을 경험했던 인물들이다. 우리가 보기에도 이들의 삶은 말도 안되게 거룩하고 탁월했다. 그런 그들 셋이 한 지역에, 정확히는 심판이 예정된 곳에 모여있더라도 심판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주님은 말씀하신다.
어떻게하면 노아나 욥이나 다니엘처럼 살 수 있겠는가. 생각만해도 아득하다. 그러니까 더더욱 이 말씀가운데 거론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결함과 거룩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예수님의 거룩한 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것이다. 도리어 아담의 무거운 죄, 그리고 그로 인해 대물림된 인간의 죄성은 그들 세 의인 개인의 거룩함보다 훨씬 간악하고 무겁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런 의인이 될 수없다. 나는 죽어마땅한 죄인이다. 내 의로움에 취해서 내 죄에 대해 당당하지 못하는 것이 감사하다. 나는 한번도 내가 거룩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도리어 살인자가 뻔뻔하게 고개 쳐들고 다니듯이, 내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때가 있다면.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으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라며 칼을 사방으로 휘두르듯 마음을 먹은 것에 가까웠던 것같다. 더러울수록 원래 그 더러움을 차치하고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는 법이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니까.
주님의 말씀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죄악을 회개한다. 어떤 상황 어떤 곳에 있더라도 주님과 함께 견디어 낼 수 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런 결심은 언젠가 사라져버리고 또 넘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없으면 내 삶도 함께 망가지고 무너져내려 주님을 다시 찾게되는 일에 감사하다. 참으로 한결같다. 마음속의 우상을 버리지 못해 끝내 심판을 받고 돌이키는 이스라엘처럼, 어제도 오늘도 죄악에 물든 나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은혜를 실감한다. 나는 주님의 소유물이다. 주님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 내 소속은 주님이다. 글로 다 표현 못하는 나의 경험과 그로 비롯한 마음들을 함께 동행하신 주님은 알고 계신다.
앞으로의 결과가 어찌되든 나는 주님께 내 영혼 맡겼으니 주님께서 나를 이끌어주시길, 무엇보다도 내 삶을 회복시키는 가장 중요한 은혜는 감사일것이다. 주님의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삶을 주님께 드리고싶다. 욕망에 취해 소모되는 삶속에서 끝을 모르고 소비하기만 하는. 그럼에도 불평불만으로 점철되어 스스로를 파괴하는 그런 심판에서 나를 건지신 주의 은혜는 나의 입술에서 찬양과 감사로 매일마다 터져나오는 간증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