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친구 덕질만 15년을 했다. 덕질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늘 멋지게 열심히 사는 친구지만 수요자 입장에서의 시선을 얘기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관계자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처음엔 편지나 몇 장 전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다. 대중의 입장에서 대중을 논하고 싶다는 욕심이.
데드라인이 코앞이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보기로 했다. 먼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목록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곧 목차가 됐다. 목차가 완성되자 글은 생각보다 막힘 없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정말 하고 싶던 말들이라 그런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보다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3일간 반나절 정도를 투자했고, A4 기준 약 70장에 달하는 원고가 완성됐다. 그 친구만을 위한 내용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공개할 생각은 없지만, 그냥 프린트해서 넘겨주기엔 억울한 분량이라 책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표지도 필요했다. 포토샵은 대충 만질 줄 알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그래서 욕심은 버리기로 했다. 그냥 깔끔하게 가자! 참고로 이 모든 것은 일을 하는 와중에 퇴근 후 시간에 진행된 일들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짧은 시간에 마무리가 된 게 신기하긴 하다.
A5형 인쇄를 결정하고 목차와 페이지를 다듬어 PDF로 변환한 후 인쇄소에 넘겼다.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작은 책이 손에 들어왔다. 어쨌든 나 혼자 만든 첫 책인지라 기분이 이상했다.
책 안에 적은 내용에 그 친구가 얼마나 공감을 할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읽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5년간 관찰하며 느끼거나 모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리한 글이기 때문이다. 표로 만들지만 않았지 SWOT 분석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거의 다 포함돼 있는 글이었다.
읽는 걸 좋아하고 똑똑한 친구라 굳이 긴 글로 전달하게 됐지만, 그 책이 그 친구에게 어떤 의미일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인쇄물을 손에 쥐기까지 약 1주일간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나도 분명 얻은 게 있었다. 바로, 뭐든 글로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글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면서도, 한동안 퇴근하면 글쓰기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단순하게는 두뇌도 좀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물론 습작의 수준을 놓고 나중에 낯부끄러워질 수도 있다. 근데 떠오른 생각을 그냥 삼키는 것보다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를 위해 쓴 내 첫 번째 책은 어쩌면 나를 위한 큰 선물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좋은 기억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