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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작몽상가 Oct 28. 2020

잔디에 누워 보기

누워서 바라보는 세상은 조금 다르다. 팔을 양옆으로 털썩 털어내고서 까칠하고 딱딱한 등판을 이리저리 잘 비벼본다. 나란히 어깨를 늘어트려 바닥에 눌러 몸을 들썩여 본다. 그다음에 지그시 눈을 뜨면 방금 느낀 바람의 온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고, 아까 더듬거렸던 나무가 아니며, 조금 전에 서서 본 그 하늘이 아닌 것 같다.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내가 자연을 바라보는 게 아닌 자연이 나를 바라봐 주는 기분이 든다.
잡힐 듯 말 듯 빛 뭉치가 아른아른 떠다니는 몽롱함에 취한다. 내가 마주친 모든 것들의 움직임이 둔해지며 나의 눈이 담아내는 대상들은 조용히 내게 고개를 살짝 기댄다.

-2017.03
 


 

잔디에 누워 2017




프랑스에 살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잔디에 털썩 누워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을뿐더러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한다. 날씨가 좋은 여름에는 벤치나 잔디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에 갔을 때 나도 모르게 잔디에 돗자리 없이 털썩 앉았는데 아무것도 안 깔고 잔디에 앉으면 쯔쯔가무시병에 걸린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나의 세대 때는 집이 아닌 바깥에 누워 있는 모습이 그렇게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유럽에 있어보니 한국과 많은 문화 차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문화는 역사적인 배경이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는데 또 한 가지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나라의 온도, 계절 즉 기후인 것 같기도 했다. 


 정말 단순한 예로 프랑스가 와인 최대 생산국인 까닭은 포도나무가 잘 자라는 습도와 온도를 가지고 있다. 와인을 많이 생산하다 보니 자연스레 식탁에 항상 곁들여졌다. 그렇게 와인을 바탕으로 또 하나의 습성이 자라나고 지금은 프랑스의 가장 내세울 만한 특산품이자 모여서 와인을 마시는 것 자체가 프랑스의 문화이다. 

우리의 김치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습도가 높아서 수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 배추가 아주 잘 자라나는 비옥하고 질척한 땅이다. 나라마다 그 기후의 특성에서 많이 자라나는 농작물을 배경으로 우리의 식습관이 형성된다. 식습관은 수많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거대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다시 돌아와 보면, 한국에서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행동 가지에 있어서 조금 금기시되는 것들도 있지만 실제로 기후 조건이 습도가 높아 잔디가 촉촉해서 눕게 되면 진흙이 묻어 나오고 실제로 몸에 해로운 야생 진드기와 같은 유충이 많고 실제로 이 작은 벌레들이 우리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기도 하다. 그래서 조심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런데 유럽의 잔디는 특유의 기후 조건인 건조함 때문에 우기가 아니면 잔디가 바싹 말라있다. 몸을 뻗고 누워있기 아주 제격이라는 것이다. 누워 있일 수 있음이 하나의 문화가 된 프랑스나 다른 유럽의 특성은 바로 기후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아무쪼록 덕분에 누워서 자연을 바라보니 평소와는 조금 색다르게 느껴졌다는 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프랑스와 한국은 극과 극의 정반대의 두 나라 같다. 정말 많은 생각들과 문화, 생활 습관, 논리가 각자의 거꾸로다. 오죽했으면 프랑스 문화는 어떤지 궁금하고 배워 보고 싶다는 부모님께 우스개 소리로 말했다. "아주 쉬워요. 뭐든지 그냥 우리나라에서 하는 것의 무조건 반대로만 하면 그게 프랑스 문화예요." 

두 나라의 문화를 겪어 본 나에게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프랑스 문화가 좋아? 한국 문화가 좋아? 

나는 "그냥 두 나라가 완전히 달라"라고 대답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온부터 다른 두 나라가 어떻게 같은 사고방식, 생각, 문화를 가질 수 있겠나 했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이 요소가 감성 형성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자연을 보며 단순하게 한국인으로서, 이방인으로서 신기하고 처음 보는 것들에 대해 내가 느끼고 공감을 얻고 싶은 부분을 신나서 이야기를 하면 프랑스인들은 늘 봐오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크게 감흥이 없었다. 우리는 정서적으로 통일될 수가 없다. 나는 장독대에서 김치를 꺼내는 것을 봐온 사람의 정서이고, 프랑스인들은 오븐에서 빵을 꺼내는 것을 봐온 사람들의 정서인 것이다. 기후로 인한 감성의 차이가 결국 민족성과 연결되기도 한다고 본다. 정말 원시적으로 접근했을 때 우리가 보고 자라는 식물이 다르고 재배하는 작물이 다르고 또 먹는 음식 자체가 다르니 감수성의 차이가 엄청 날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니 생각하는 방식이, 문화가 이렇게 우리와는 다르게 자리 잡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프랑스 잔디는 한국의 진드기보다 더 무서운 것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바로 강아지들의 배설물.

철퍼덕하고 눕기 전에 꼭 한번 가볍게 훑어보기는 해야 한다. 


잔디에 앉거나 벌러덩 누워 있을 수 있는 여유 속에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프랑스가 좋다.

그런데 사실은 잔디에 굳이 앉거나 눕지 않아도 또 다른 방법으로 쉴 곳이 많은 내 고향이 제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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