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노을빛이 아닌 달빛에 기대어 하루를 마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또 여느 때처럼 고장 난 소리 없이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겠지. 사실 몰랐던 때도 있었는데 내가 그 당사자가 되고 보니 우리가 더 애틋하고 각별한 사이가 되었을까.
-2017.12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인의 삶만 있는 줄 알았다. 주말이란 금요일 밤부터 시작해서 일요일 밤까지 지속되는 기간을 뜻하는 것인 줄만 알았다. 어릴 때 늘 들어온 말은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지.”
그러나 어른이 되고 돌아보니 참으로 당연하게 생각해온 문장들에 해당되지 않는 예외가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밤에 일찌감치 잠을 잘 수가 없고, 다음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었다. 오후에 출근을 하고 밤에 퇴근하는 사람들도 있고, 저녁에 출근해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이런 것은 아무도 말해주거나 가르쳐주지 않는 건가. 그리고 하나 더 알게 된 것은 그 사람들의 범상치 않은(?) 무리에 내가, 나의 직업군이 포함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듣기만 해도 설레는 ‘주말’이란 단어는 광란의 금요일 밤부터 시작돼서 환희의 토요일을 거쳐 나른해지는 일요일 밤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토요일 일요일에 일을 하고 평일이 주말인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게 또 나였다.
24시간 열린 편의점을 아무 때나 이용해보았음에도 밤늦게 택시를 타보았음에도 그리고 그 늦은 시간에 귀가하려고 길가로 나오면 그 밖에도 참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도 이렇게 눈을 뜨고도 사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나는 내가 당사자가 되고 나서야 피부로 와 닿았고 비로소 수많은 사람들의 고됨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밤늦게 들어갈 때 버스에서 마주친 지친 듯 인상 쓰던 사람들, 꾸벅꾸벅 창문에 기대어 졸던 사람들이 나처럼 펑펑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닐 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 버스가 누군가에게는 퇴근버스 일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밤늦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면 되도록 타고 내릴 때 사람들과 최대한 부딪히지 않게 비켜가고 불필요한 전화통화를 삼간다. 그리고 이어폰 너머의 음악이 바깥으로 들리지는 않을까 항상 확인하고 조심하게 되었다. 내가 퇴근용으로서 그 시간에 대중교통을 타보니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해줬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문득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떠올랐다.
“야 남들이 쪼끔 어쩐다고 뭐라 하고 흉볼 일 아니여. 남 일이 다 내 일이고 내 일이 남 일 된다니까”
엄마의 말을 해석하면 남들이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사는 방식이 다름을 비난하지 말아라.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싸주도록 해라. 어찌 보면 이 길고 긴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에 놀랄필요도 없는 것이 곧 그 일에 내가 해당되기도 한다. 누군가 겪은 아프고 슬픈 일들은 언젠간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겸손하라 라는 뜻이다. 듣기 싫었던 엄마의 아줌마표 뜬금포 당연한 말들 중 하나인데 살다 보니 점점 와 닿기 시작한다. 쓸데없는 잔소리가 아니라 어디 세상 진리 백과사전 같은데 적어야 할 듯한 훌륭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그랬다. “뭐니 뭐니 해도 남들 일할 때 하고 남들 쉴 때 쉬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인디...” 라며 밤늦게 마치는 나의 퇴근길을 항상 걱정하시고는 한다. 그런데 어떡하나 엄마 딸의 일이 그런 것을.
그래도 많은 사람들과는 반대되는 삶을 살아보니 좋은 점도 있었다. 새벽 불면이 심했고 아침잠이 많은데 아침에 충분히 잘 수 있다는 것,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이 비교적 한산하다는 것. 혼자만의 시간이 늘었다는 것, 주말에 (나에게는 평일) 전시회나 미술관에 가면 사람이 별로 없어서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는 것, '다름'에 대해 피부로 느끼며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달을 맘껏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퇴근길 매일매일 달을 찾았다. 나에겐 하나의 루틴(routine) 이 되었다. 집에 거의 다와 갈 때 즈음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를 걸으며 달을 볼 때면 그와 나만이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둘이서 세상에 어둠의 마법을 걸어 밤은 찾아왔고, 한적한 둘만의 공간에서 서로를 바라봐주며,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거의 지나지 않는 밤에 하루를 마치는 일과의 장점은 고요한 정적 속에 달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나도 모르게 경건한 태도로 그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 수 있다는 것.
어제도 달은 빛났다. 구름 또한 그의 삐져나온 빛에 옷가지가 붙잡혀 달아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렀다.
-2017.11
달은 나에게 특별한 위로이고 친구이자 보호자였다. 나는 커다란 그가 벌리는 두 팔 사이로 내 몸을 구겨 넣고는 쏙 안겼다.
가득 차서 떨어졌다. 마구 떨어져 허공의 어둠 속에 곤두박질쳤다. 달빛의 무게를 재어 본 적이 있는가. 그 무게는 눈꺼풀을 지긋이 내려앉게 만드는 정도뿐이다.
-2018.04
추위로 옷을 벗은 삭막한 나무 가지들을 숨기려 포장한 거리의 온갖 인조 조명들이 서로 더 화려하겠다며 발광하고 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홀로인 그는 자체로 얼마나 크고 밝은지 말이다.
-2017.12
어둠이 가득한 밤
고요한 밤에
오늘도 안간힘을 쓴다
홀로 잠들지 못해 얼마나 외로운지
칠흑 하늘이 덮치는 이 밤이
내게도 얼마나 무서운지
아무도 모를 거야
불빛을 켜면 그 마음 조금 덜 할까
모두가 잠든 사이
혹시 스스로를 하얗게 태우면
잠들지 못하는 누군가는
낭만의 노랫가락을 귀에 꽂고
창문 너머로 홀로 남은 나를
나의 외침을 바라봐 주겠지
그리고 우린 함께 차디찬 이 밤을 견뎌내겠지
얼마나 무서운지 아무도 모를 거야
오늘도 나를 달래며 환하게 불을 켠다
고요한 밤에
어두운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