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가지의 색연필을 꺼내서 쓰다 보니 마음이 조금 좋아졌다.
그래도 저렇게 많은 색깔 중에 나라는 색 하나는 있겠지.
나도 하나의 필요한 존재이니까 수많은 색깔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한자리 차지하고 이름을 달고 살아가고 있겠지...
-2018.01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있다. 칠이 한 겹 두 겹 입혀질 때 순간의 속도, 강도, 촉감과 느낌이 붓을 사용할 때 보다 가깝게 밀착되어 몸에 와 닿도록 사이를 좁혀주고 손 끝부터 시작해 팔 전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그 느낌을 맞이 하면 종이 위에 내 영혼까지도 닿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 드는 게 참 좋아서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가지만 색연필을 놓지는 못하겠다.
오늘은 이상하게 비를 맞아 젖은 영혼이 자꾸 그림 속에 칠해져 들어갔다.
그래서 눈을 비비고 다시 또 칠을 한다.
-2018.01
집 한 채를 짓는데 시계가 두 바퀴를 돌았다. 많은 생각이 들 때는 마음을 색연필로 조금 문질러 본다.
벗겨내기보다는 덧 칠을 해서 덮어내고 이따금 다듬어 보고 또 한 겹 더 씌워본다. 하얗게 지워 내기엔 문지를수록 티끌이 울고 일어나서 더 성가시게 되거든.
그래서 어르고 달래서 다른 색으로 덮으며 안아주면, 그 마음이란 게 조금 괜찮아지더라고.
-20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