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할 수 없지만 나는 내 글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정말 싫다. 그건 그냥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사춘기 때 써놓은 일기 따위를 분노의 방청소를 하던 엄마에게 들킨 적이 몇 번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것 외에는 내가 자의적으로 보여주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살면서 말로 거짓말을 한 적이 많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 그냥 그렇게 하는 게 편해서 또는 단순히 내 맘이니까 등 특히 괜찮냐는 말에 괜찮다고 답하는 거짓말은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글에서는 거짓말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쓰는 고해성사와 같은 이야기 이기 때문에 나는 진득하게 엉덩이를 눌러앉아 반성도 할 겸 치유도 할 겸 회상을 하며 조금 비워내기 위해 글을 쓴다.
그래서 솔직한 감정을 날것 그대로 쓰다 보니 그 속에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 결코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나의 마음의 상태와 심정이 적혀있다. 특히 나라는 인간이 가진 모난 면이 주로 글로 풀어져서 나오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서 나와 지내온 가족에 대해 건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건드린다기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연결이 되어있으며 내면 형성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 관계이자 숙명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그 안에서 각자가 받은 상처가 있을 것이고 결국 각자의 우울감 형성에 보탬이 된 것은 불변의 사실이라 이러한 내용이 쓰여 있는 나의 글에 '우리 가족 관람 불가' 스티커를 붙이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우리 중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물론 원망해도 되지만 결국엔 그것은 자신의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관계에 놓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후자를 택하지는 않기로 다짐하고 미워는 해도 원망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한 번도 나의 마음을 들킨 적이 없었는데,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들을 갖다 보니 괜찮아지면서도 일시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결국에는 직면하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끝이 나질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 지난 일을 지금 와서 뭣하러 꺼내느냐? 나도 그게 싫어서 피하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서 현재로 시원한 발돋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항상 과거에 묶여 있는 포로가 되었다. 현재로 오지 못하다 보니 허우적거렸고, 그 웅덩이 속에서 미래를 꿈꿀 여유가 없었다. 현재 속에서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애석하게도 나를 계속해서 과거로 데려왔다. 그런 와중에 아주 다행히도, 그림은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날개를 펴 볼 수 있는 쪽으로 바람이 불게 해주는 역할을 했고 그 뒤를 이어 나이를 먹으며 어른이 되어감 역시 많은 일들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편해지게 되자 최근에 나는 집에 갔을 때 용기를 내 내가 어떤 것들에서 힘이 들었었는지 하나 둘 털어놓게 되었다.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은 남겨두고 나를 위해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모든 불안을 털어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은 내가 살아있다고 말해주는 증인이며 그 소리를 크게 들리게 증폭시켜주는 확성기 같았다.
얼마 전 예기치 못하게 잠시 한국에 갈 일이 생겼는데 코로나 사태 때문에 자가격리 2주를 해야 했다. 나는 그 시간에 마음에 담아두던 글쓰기 공모전에 참여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나를 조금 꺼내보고 싶었다. 나의 마음 사정이 그림을 그리면서 몇 년 새 조금 나아졌기 때문에 글을 써볼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부모님께 알렸다. 별 다른 이유는 없고 내가 아무렇게나 막 지내는 것 같아도 나름대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바로 네가 글을 썼냐고 놀라더니 무슨 글을 쓴 것이냐고 몇 번이나 묻는다. 나는 절대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보여 주겠다 버텼다. 그리고 엄마는 또 보여달랜다. 그래서 나는 싫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혹시라도 당선이 되면 그때는 보여주겠다고 흘러 보냈다.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문득 어느 날 공모전에서 축하 연락이 왔다. 처음으로 해본 도전이자 나를 드러낸 첫걸음이었는데 고맙게도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주었나 보다. 신기해서 엄마에게 냉큼 이야기했는데 엄마는 그때부터 또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되면 보여준다며 보내봐." 나는 괜히 말했다며 그냥 좀 개인적인 것들이 많아서 보여주지 않는 게 나은 거 같다고 했더니 약속을 안 지킨다고 서운해하시며 아무도 안 보여 줄 거면 왜 써냈냐고 하셨다. 그렇긴 하다. 보여주지 않을 글을 써서 공모전까지 가져간 것은 말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내 마음을 읽는 것은 (오히려 고마웠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유독 가족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손을 뻗었지만 용기를 지켜내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단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디오 스튜디오에 가서 내가 쓴 글을 읽고 녹음하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가보는 방송국에 길도 모르고 떨리고 두려워서 엄마를 대동했다. 서울에 사는 오빠의 집에 머물다가 일산에 있는 ebs 방송국으로 향했다. 내가 쓴 글을 직접 소리 내어 읽어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고문 같았다. 나는 흑역사만 남을 그 시간이 너무 지옥 같았다. 그러면서도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는 것임에 흥분이 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값진 경험임은 확실했다. 그런데 내가 스튜디오에서 떨리고 메마른 목소리로 가족에게 죽어도 보여주기 싫었던 글을 나의 생 목소리로 읽으며 그대로 현장에서 엄마의 귀에 전하게 되었다는 것이 굉장히 부끄럽고 분했다. 숨고 싶어도 녹음실 문을 열고 나오니 쥐구멍은 없었다. 나는 엄마의 눈을 보았다. 엄마는 눈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나는 억울한 눈으로 들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한마디 했다. "잘 썼네." 나는 자존심이 상했는데 피디님과 다른 분들도 있었기 때문에 애써 불편하게 미소 지으며 "엄마 딸이 썼으니까 잘 써 보이는 거야."라고 톡 쏘았다.
방송국을 나오면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막상 엄마한테 공개를 했지만 바깥은 지진이 일어나지도 폭풍이 몰아치지도 않았다. 바람은 여느 때처럼 한점 없었고 마른 태양이 강렬하게 우리를 구워냈다. 잘 마쳤으며 지하철을 어떻게 타야 하는지 물을 겸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는 이제 작가 된 거냐며 저녁에 파티를 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이게 그렇게 축하할 일인가 싶었다. 엄마에게 들려주고 나서 내가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다시 나를 꼬시기 시작했다. 오빠에게도 보여주자고. 그런데 그곳을 나오고 나서, 나는 의외로 무척이나 담담해져 있었다. 막상 별 일이 아닌데 나 혼자 난리를 쳐낸 듯 허무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맥주를 샀다. 그리고 저녁엔 오빠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었다. 우리는 단출한 건배를 했고 나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휴대전화를 꺼내 글을 오빠에게 건넸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작아지고 작아져서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막상 오빠가 육성으로 음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파묻고 금방 다 읽더니 아무 말 없이 엄지 손가락을 살짝 들어 올렸을 때는, 내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집이 온통 책으로 둘러 쌓여있어 책이 사는 집 같은 집에 사는 오빠는 내게 앞으로 책을 더 많이 읽어보면 어떠냐고, 그럼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다.
참 쉽지 않다. 가족에게 나의 생각을, 나의 속내를 들키는 일. 하지만 다 하고 난 뒤에는 내심 후련했다. 동시에 찝찝하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엔 우리가 이어져 있기 때문에 가족이야 말로 누구보다 더 그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려웠지만 한번 해내고 나니까 우려했던 것만큼 큰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스쳐가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이기 때문에, 타고난 숙명이기 때문에 나는 더 조심스럽고 신경이 쓰였다. 그들은 내게 그런 사람들이다. 가족은 그런 것이었다. 그 부분을 인정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글 잘 읽었어.' 한참이 지나고 언젠가 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가 보여줬나 보네 하고 고맙다 말하며 자연스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토록 조마조마했던 일이 조금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서 한편으로 기뻤다. 다행이기도 했다.
그런데 솔직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웬만하면 내 글을 가족들이 읽는 일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읽게 하고 싶지 않다.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 가지 말하지 못한 게 있다. 그들 앞에 실제 하는 내 모습보다는 글 속의 내가 여전히 진짜 나와 더 근접하다는 말이었다.
현실에서의 나보다는 글 속에서의 내가 나이니까. 그 모난 모습이 정말로 나라고 느껴지니까.
그래서 내 글은 나를 실제로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혹시 심장이 약하다면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알던 내가 아니라고 느껴질 수도 있기에.
특히 가족은 절대 보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