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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작몽상가 Nov 02. 2020

가르마

죽음, 삶

정원님의 사진을 연필 스케치 2017
생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매우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간혹 들어온 어르신들의 죽지 못해 산다는 말, 사실 생각보다 극단적인 말이 아닐 수도 있다. 단 한 끗 차이로 냉정하게도 우리는 삶에 몸담고 있기도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삶과 죽음 이 둘의 가르마 위에 서면 비틀비틀거리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것 같지만 실은 막상 가르마 위에 올라서게 되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체념의 상태에 이르러 어느 쪽으로든 얼른 발이 삐끗하게 되길 바라게 될지도 모른다. 그 상태가 온다면 감히 고귀한 상태에 이르렀다 표현하면 어떤가 싶다. 

며칠 전, 문득 보니 키우던 화분이 말라가고 있었다. 잎이 시들 시들하고 생기를 거의 잃어 노란기가 나타나고 아주 많이 늦은 후에야 알아차렸다. 그래도 혹시 몰라하는 마음으로 조급히 물을 한 잔 떨어트려줬다. 물은 잎사귀의 사정을 알 턱이 없으니 전혀 성급하지 않았다. 그는 점잖은 하강을 하며 아주 천천히 스며들어갔는데 잎들은 죽어가는 마당에 또 딱히 살아보려 힘을 쓰지도 않은 채 원래 유지하던 자세 그대로 축 쳐진 채로 가지런히 누워 차분한 상태로 그를 서서히 받아냈다. 

며칠이 지나 화분을 봤더니 잎은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혈색을 되찾았다. 오히려 가운데에는 조그맣고 연한 순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고서 옛 잎들을 옆으로 밀어냈다. 중대하다고 느꼈던 두 통로에 있는 경계선의 굵기가 물 한잔 조용히 흐르고 지나가는 얇고 가벼운 통과선일 뿐이었다. 숭고한 삶은 살아지는 대로 또 살아지는 만큼 그렇게 맡겨내는 것이고 , 아마 숭고한 죽음은 그의 반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이 마시고 싶어 졌다.
연하게 찾아온 어린잎이 점점 진해져 간다. 

-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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