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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작몽상가 Nov 03. 2020

엄마는 누가 더 좋아?

아이들한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는 질문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읽은 적이 있다. 심리 전문가들은 어른들의 단순한 장난으로 시작하지만 아이에게 한 가지의 답을 요구하는 것은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어린아이들에게는 큰 혼란일 수 있고 선택을 강요하는 일이며 질문의 전제에는 아이가 엄마와 아빠 둘 중에서 하나를 좋아하거나, 둘 다 좋아하거나, 둘 다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기에 그다지 좋은 물음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 부모에게 "내가 좋아? 오빠가 좋아?"라고 묻는 것은 비슷한 오류를 범하는 것일까?





효자동교회 놀이터


어릴 때 오빠가 하는 대로 뭐든 따라 하려 했다고 한다. 오빠가 놀이기구에 발 올리면 나도 짧은 다리로 똑같이 발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따라쟁이. 어릴 적 나의 제일 친한 친구이자 가족, 경쟁자이며 내 거울 같았던 오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린 그림.

-2017.12


연년생인 오빠와 나는 각자의 나라의 편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른 말하자면, (지금은) 퇴역군인들이다. 우리는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전쟁을 했다. 누군가를 가장 많이 때려본 것도, 제일 많이 맞아본 것도, 알고 있는 가장 심한 욕을 퍼부어 본 것도, 그 욕을 들어본 것도 오빠였다. 아무튼 보이지 않는 피가 흠뻑 튀겼던 불같은 그 전쟁 덕분인지 우리는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가장 잘 아는 사이가 되었는지도.


 최신 유행이었던 해리포터 책을 읽는 것은 우리에게 중대한 일이었다. 문제는 일단은 오빠가 읽어야 그다음에 내 차례가 왔다. 그래서 오빠가 지체되면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고 오빠는 여유롭게 좀 읽으면 안 되냐고 나에게 도리어 퍼붓고, 다 읽게 되면 내 옆으로 와서 일부러 화를 돋우려고 내용을 폭로하려 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아슬아슬하게 괴롭혔다. 모든 책이 그랬다. 오빠 먼저, 그다음에 나. 하도 싸워서 언젠가는 엄마가 나 먼저 읽게 해 주자고 했는데 내가 느리게 읽자 오빠가 엄마에게 항의를 하는 바람에 결국엔 엄마가 나를 타일렀다. "오빠는 너보다 빨리 읽으니까 먼저 보게 해 주자."  분해서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또 어느 날은 엄마가 내 책 오빠 책을 따로 사자고 해서 신나게 각자 골라서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오빠 책이 더 재미있는 거 같아서 입이 대판 부르터서 쭉 나와 다 내팽겨 치고 오빠 책을 읽겠다고 난리를 치면 오빠는 빌려줄지 말지 생각해 보겠다고 약 올렸다. 그리고 정말인지 오빠가 고른 것이 더 재미있었다. 오빠는 강조하며 '내' 책 잘 읽었냐고 계속 깐족거렸다. '내 책'이니까 앞으로 볼 때마다 허락을 맡으라고 하며 마음대로 보지도 못하게 한다. 그럼 또  열이 올라서 눈물이 고였다.


  사람 모형 인형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취학 전에 가지고 놀던 봉제 인형은 있었겠지만 아주 어릴 때라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 주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은 팽이놀이나 딱지치기 레고 조립이었다. 선머슴아가 따로 없다. 오빠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놀다 보니 주로 동네 남자아이들과 자전거 타기, 롤러스케이트, 야구, 축구, 농구, 술래잡기, 달리기, 오락실 배회 그리고 집에 오면 모뎀으로 인터넷에 연결해 전화가 중단되는 사태에도 싸워가며 탱크 게임을 서로 하겠다고 난리였다. 오빠와 온갖 팩 게임을 했고 컴퓨터 게임을 할 때도 항상 오빠가 먼저 하고 나는 다음번에 하는데 너무 빨리 죽어서 오빠는 길게 하고 나는 몇 번 하지도 못하고 죽었다며 통곡을 했다. 그러면서도 게임을 하다가 보스를 만나면 그때는 오빠를 다급하게 불러서 넘겨주고 안도의 한숨을 내리 쉬었다.


윗집에 살아 친하게 지내던 오수진의 집에 처음으로 놀러 갔는데 갖고 싶었지만 한 번도 만져보지도 못했던 바비인형들이 컬렉션으로 모아져 있고 바비인형 수집의 최고 종착지인 바비의 성이 있었고 게다가 그녀의 파트너 캔이 있었다. 세상 처음 보는 분홍빛이 꽉 찬 예쁜 방에 있는 침대, 커튼, 책상 등과 실물로 처음 접하는 캔의 멋진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집에 다녀간 이후로 오수진을 미워하고 질투하기 시작해 틈만 나면 괴롭히고 우리는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서 '오수진은 여자인 척하는 게 꼴베기 싫다'라고 쓰인 것을 보았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오빠가 입은 옷을 쌍둥이마냥 걸치고 있다. 훗날 엄마에게 나도 좀 예쁘게 입히지 오빠랑 똑같이 머스마 같은 것을 입혔냐고 하니 엄마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하이고 가시네 네가 어땠는 줄 아냐? 오빠가 하는 건 무조건 똑같이 하려고 해서 옷도 오빠 뭐 하나 사주면 같은 거 입을라고 별 난리를 다 쳤으니까. 그거 안 입히면 큰일 났어야~."라고 말했다.


 음악재생기(mp3)도 문제였다. 그것이 최신으로 갓 나왔을 때 오빠는 중학생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 최초로 손에 넣었다. 그날 박탈감이 무지 컸다. 고가의 물건이었고 무리를 해서 아빠가 성적이 아주 좋았던 오빠의 학습 증진을 위해  큰 맘먹고 사준 것이다. 입이 대판 나와버렸다. 왜 나는 안 사주냐는 말에 엄마는 "너는 관리를 못하니까 안돼" 하셨다. 너무나 억울한 것. 항상 전자 기계는 오빠가 다 쓰고 필요 없어지면 내게 오게 되었다. 그리고 몇 번 쓰지 못하고 고장이 난다. 그럼 엄마는 "함부로 아무렇게나 하니까 망가지지 쯧쯧" 하고 혼을 내면 나는 늘 헌것만 물려받아 몇 번 못쓰고 안 되는 것도 서러운데 망가트린 주범으로 몰리니 억울했다. 그럼 나는 필사적으로 오빠가 다 망가트리고 못쓰니까 나 준거라며 오빠 탓으로 돌리고 저항했다.


 어릴 때 가족들이 부르던 나의 별명은 '까시손'이었다. 뭐든 내 손에 오면 남아나질 않는다고 해서 가시 같은 손이라고 한 것에 거칠음을 강조하기 위해 '가시'도 아닌 '까시'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별명이 있었는데 '세모 입'이었다. 입술이 두꺼운 데다 세모 모양이기도 했고 하도 잘 삐지는데 그때마다 입이 부르터서 빼족 세모로 나온다고 그렇게 불렸다.

지금은 안다. 당연히 두 개를 못 사는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가 컸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실제로 물건들을 막 쓰기도 했다는 것도. 그리고 가족 중에 나만 여러 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가족의 문젯거리였다는 것도 잘 안다.





정말로 궁금해서 물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고 이제는 물을 수 있었다. 이렇게 크고 나니까 전에는 못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되는 시간의 마법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엄마 진짜로 진심으로 이야기해도 나 괜찮으니까 진짜 딱 말해봐요. 부모들은 진짜로 첫째를 더 좋아하는 건가?" 엄마는 침묵한다. 나는 재빨리 덧붙인다. "그게 그냥 진짜 궁금해서 그러니까 다른 생각 안 할 테니 딱 말해줘 봐. 조금 더 신경이 쓰이는 자식이 아무래도 있을 거 아니야. 같은 자식들이 몇 있어도 첫째 장남은 진짜 더 귀하게 느껴지는 건가? 나는 자식이 없어봐서 몰라서 그래. 제발 말해줘 봐요"(오빠를 더 좋아한 거 맞지?를 말하고 싶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부모님이 오빠를 아주 특별하게 여겨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졸라대니 엄마는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 지어지는 웃음을 짓고서 머뭇하며 우리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더니 손가락으로 "오..." 하면서 오빠를 가리킨다.

오빠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 엄마를 한번 쳐다보더니 짓궂게 싫은 척을 하느라 고개를 푹 떨궈내고 자는 시늉을 하더니 나를 슬쩍 보고 음소거를 하고 입모양으로 '으하하' 하며 승리의 주먹을 불끈 쥐어냈다.


 속이 다 시원했다. 장난으로 일부러 오빠를 가리킨 거 아니냐고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엄마가 장난이라고 말할까 봐서 얼른 큰소리로 "아아 그렇지? 아 진짜 이걸 이제야 밝히는군" 하면서 장난스럽게 되받아 쳤다.

내가 생각했던 것이, 느꼈던 것이 기억의 조작이라던지 하는 거짓이 아니었으며 착각병에 걸린 미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몇십 년 묵은 찌꺼기가 푹 삭아서 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했고 듣고 싶은 답이 나와서 되려 서러움이 조금 풀렸다. 사실이든 아니든 차라리 엄마가 내가 원하는 답을 해주길 바랐다.


엄마는 그다음에 크게 웃으시더니 "야 그래도 너네 셋이 다 예쁘지." 하셨다.

엄마에게 내가 정말 괜찮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속으로 내가 옳았다는 것을 되새겼다. 내가 가졌던 감정에까지 재판을 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또 자책하고 스스로 미움만 살 테니까. 그 지경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 모든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오빠는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근데 그게 왜 그런 줄 알아? "

"왜 그런 건데?"

"첫째 하고 보낸 시간이 둘째보다 조금 더 많아서 그런 거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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